칭찬은 결국 고래를 죽인다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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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있었다. 책을 읽진 않았는데 제목은 또렷이 남는 책이다. 칭찬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칭찬을 남발하게 했던 제목. 나도 대화 중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잖아!” 하면서 몇 번은 써먹었을지 모른다. 기억난 김에 검색해서 찾아보았다. 2002년에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왔고, 최근에도 스페셜 에디션이 나올 만큼 인기있는 책인가 보다.

출판사 서평을 조금 훑어보았다. 주인공은 무게가 3톤이 넘는 범고래의 멋진 쇼를 보고 그렇게 멋진 쇼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한다. 범고래 조련사는 “범고래와의 관계는 인간 사이의 관계와 다르지 않으며, 멋진 쇼를 만드는 비결은 상대방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과 칭찬, 그리고 격려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칭찬과 격려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준다”고 한다. 주인공은 이후 “두 아이와 아내로부터 사랑받는 가장이 되고, 직장에서도 보다 높은 성과를 올려 동료들과 부하직원들로부터 존경받는 상사가 되는 데 성공한다”고 적혀있다.

저자는 경영인이자 경영컨설턴트. 음, 역시 짐작대로다. 경영의 세계, 교육의 세계, 가부장의 세계, 쇼의 세계에서 칭찬이라는 도구는 아주 유용하다. 고래도 춤추게 하고, 직원들도 춤추게 하고, 아내도 춤추게 하고, 아이들도 춤추게 하는 것. 칭찬으로 생산성을 높여 매출을 올리고, 칭찬으로 아이들과 아내가 순종하니 집 안을 화목하게 할 수 있다는 결론인 것이다. 무뚝뚝한 경영주나 가부장보다는 칭찬하는 사장이나 아빠가 훨씬 자본주의의 혜택을 많이 누릴 수 있다. “긍정의 힘”이 득세하던 2000년대 초반이었으니 이런 제목의 책이 얼마나 많이 팔렸을지 짐작할 수 있겠다. 최근 나온 스페셜 에디션은 120만부 판매 돌파 기념이라고 하니 자기계발서 분야에서 스테디셀러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사서 읽고 있는 책인 것이다.

이런 책을 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려고 기를 썼을까”를 생각하면 아득하다. 실제로 칭찬이 필요없는 상황에서도 직원을, 아이를, 아내를, 남편을, 친구를 혹은 상사를 춤추게 하려는 허울뿐인 칭찬이 얼마나 많은지 다들 모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상대를 춤추게 하려는 의도, 다름 아닌 상대를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려는 욕구가 칭찬을 입 밖으로 내뱉게 한다. 물론 다들 아니라고 할 것이다. 정말 좋은 의도로, 용기를 북돋아 주고 동기부여를 해주기 위해, 또 부러운 마음에 칭찬을 한다고 자부하고 있을 것이다. 정말 그럴까. 최소한 자신을 좋아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칭찬의 기술을 활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칭찬에 서툴다. 잘 못한다. 아니 되도록 칭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 아니, 나는 진짜 이 세상에서 칭찬이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칭찬에 서툰 것은 내가 남에게 하는 칭찬 뿐 아니라 남이 나에게 하는 칭찬에도 서툴다. 얼굴을 맞댄 상황에서 대놓고 나를 칭찬하는 사람을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른다. 가까운 친구나 편안한 지인들이 건네는 것이 아닌, 한 두 번 만난 사이나 일로 만난 사이일 때 듣는 칭찬은 거북하다 못해 돌아서서 복화술로 욕이 나올 정도다. 잘 알지도 못하는 상대에게 대놓고 칭찬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칭찬을 받는 상대보다 자신이 갑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고, 적어도 갑의 위치에 있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갑과 을로 만난 사이에서 나의 능력치에 대해 과한 칭찬을 하는 클라이언트의 일을 단칼에 거부했던 일이 있다. 그때는 그 일이 왜 그렇게 하기 싫었는지 잘 몰랐다. 이제는 안다. “그런 식으로 나를 통제하려고 하지 마세요!”다. 일은 일로 하는 것이지 통제하고 복종하는 관계로 하는 것이 아니다.

칭찬에 목마른 사람들도 있는 것 아니냐고? 칭찬과 격려가 사람 관계에 윤활유가 되는 것 아니냐고? 칭찬이 있으면 더 용기를 내서 능력을 뽐내게 되는 것 아니냐고? 글쎄, 칭찬이 없다고 능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닐 텐데. 칭찬이 없어서 내가 춤을 못 춘다면, 그 춤은 그냥 때워치워도 좋을 춤 아니겠는가. 꼭두각시처럼 칭찬에 매달려 춤을 출 것인지, 자신이 원하는 춤을 출 것인지 결정할 일이다.

멋진 쇼를 선보였던 범고래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을까. 수많은 채찍과 알량한 먹거리로 만들어낸 쇼에 사람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멋진 쇼를 위해서 수많은 고래들이 피를 흘리고 죽어간다는 사실쯤은 이제 모두 알 것이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겠지만 결국 고래를 죽인다. 함부로 칭찬하지 말기를. 누군가는 그 칭찬에 매달려 굴종하고 무능력해진다는 사실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함부로 칭찬에 익숙해지지 말기를. 칭찬 하나를 들으려고 뭔가를 하고 있는 어린 아이나 강아지가 아니라면, 빨리 그 칭찬의 폐해에 대해 눈치를 챘으면 좋겠다. 칭찬으로 자기계발당하는 세상은 그만 막을 내렸으면 하는 바람에서 써 보았다.

잡지기자, 카피라이터, 에디터, 편집장 일을 했다.
글 쓰고 책 만드는 일을 간간히 하며 “공부 중” 상태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