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 바른 빵이 되지 않기 위해

[ 미미 ]

:: 루쉰 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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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과 파레시아

수년 간, 루쉰, 루쉰하고 다니니 주변에서 물었다. 루쉰이 왜 좋니? 그러게. 나는 루쉰이 왜 좋을까. 싸움과 복수, 무료와 환멸같이 남들이 잘 말하지 않는 진실하고 그렇기에 독한 소재들 때문에? 아니면, 그럼에도 글 속에 숨은 풍자와 웃음을 잃지 않는 그의 글쓰기 태도 때문에? 둘 다 맞겠지만 한 마디로 말하면, 문학과 문학 아닌 것 어디쯤에 위치한 루쉰의 글쓰기 때문이다.

앞의 말을 증명하려면, 우선 문학과 문학 아닌 것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겠지만, 지금 하고 싶은 얘기는 어떤 인상에 대해서다. 『화개집』이라는 책에는 이전의 글과는 다른 느낌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를 말하기’라 부르고 싶다. ‘있는 그대로를 말하기’라 하면, 르뽀르타쥬나 팩트 체크를 떠올리기 쉽지만, 루쉰의 글에는 이것 이외의 다른 무엇이 있다.

‘파레시아’. 말년의 푸코가 천착한 개념이다. ‘파레시아’는 솔직하게 말하기, 있는 그대로를 말하기라는 뜻을 가진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전해오는 말하기의 기술이다. 각 시대마다 말하는 주체와 듣는 주체는 달라졌지만, 있는 그대로를 말한다는 ‘파레시아’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를 말하기’가 르뽀나 팩트 첵크와 다른 점은 뭔가. 바로 여기, ‘비판’에 있다.

문학과 문학 아닌 것의 구분은 논외로 하고, 여기서는 『화개집』의 어떤 글들이 보여주고 있는 ‘파레시아’의 기능만을 보자. ‘파레시아’의 기능인 비판은, 단순히 ‘솔직하게 말하기‘나 팩트 첵크인 ‘기록’과 다르다. 여기에는 어떤 종류의 불편함이 있다. 그것은 『아큐정전』이나 『광인일기』를 읽을 때의 불편함과는 또 다른 종류의 불편함이었다.

 

이런 것을 지어야 할 때

내게 이런 단평을 짓지 말라고 권한 사람도 있다. 그 호의를 나는 매우 고맙게 여기고 있으며, 창작의 소중함을 모르는 바도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지어야 할 때라면, 아마 아무래도 이런 것을 지어야 할 것이다. 만약 예술의 궁전에 이렇게 번거로운 금령이 있다면, 차라리 들어가지 않는 게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막 위에 선 채 바람에 휘날리는 모래와 구르는 돌을 바라보면서, 기쁘면 크게 웃고, 슬프면 크게 울부짖고, 화가 나면 마구 욕하고, 설사 모래와 자갈에 온몸이 거칠어지고,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르며, 때로 자신의 엉킨 피를 어루만지면서 꽃무늬인 양 여길지라도, 중국의 문사들을 좇아 셰익스피어를 모시고 버터 바른 빵을 먹는 재미만 못하리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루쉰전집』 4 『화개집』, 「제기」 그린비, 25쪽)

문제의 『화개집』의 서문 중 일부다. 루쉰에게 단평을 짓지 말라고 권한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나 역시 루쉰의 이전 작품들인 『아큐 정전』이나 『고향』, 『죽음을 슬퍼하며』나 『고독자』와 같은 중단편에 무척 매료되어 있었기에, 처음 『화개집』을 읽었을 때의 생경함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루쉰은 자신의 글의 변화에 대해 “창작”이 아닌 것이라 말한다. 사람들이 그에게 단평을 짓지 말라고 한 것은, 창작이 문학이고 단평은 문학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단평은 일종의 칼럼 같은 류의 글이기에, 문학적 창작과는 영 다르다고 생각했다. 루쉰은 이렇게 답한다. 아무래도 지금은 “이런 것을 지어야 할 때”이다. 문학이 아닌 단평을 써야 할 때라는 것이다. 문학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 이러한 그의 생각과 마음의 변화에는 중국의 변화된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몇 차례의 혁명이 지나간 후, 적들이 사라졌다. 적들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명확했던 적들의 존재가 모호해진 것이다.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인지 알 수 없이 하루가 다르게 적들은 모습을 바꾸며 출현했다. 뿐만 아니다. 적들이 작아졌다. 과거, 중국의 혁명을 위해 맞서 싸워야 하는 적들이 ‘제국’ ‘국수’ ‘봉건’과 같은 이데올로기였다면, 이제는 습속의 혁명이 필요해졌다. 중국인들의 뼛속깊이 스며든 ‘제국’ ‘전통’ ‘봉건’ 잔재의 청산과 함께, 혁명의 열매만을 따먹으려는 위정자들과 싸워야 했다.

과거의 적들이 거대한 맹수였다면, 이제 그들은 ‘비둘기’나 ‘개’와 같아졌다. 비둘기나 개가 된 적과 싸우려면, 비둘기나 개의 싸움 형식과 존재 방식으로 맞서야 하는 법. 적들과 치졸하고 이상한 방식으로 싸우기 위해서는 루쉰의 표현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문학이 아닐 것, 단평일 것. 이게 지금은 ‘이런 것을 지어야 할 때’라고 그가 말한 이유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냐~~

루쉰이 『화개집』 이전에 단평 같은 것을 안 썼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는 이전에도 많은 단평을 썼다. 그런데 유독 『화개집』의 단평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전의 문학의 형식과 달라서만이 아니다.

「벽에 부딪힌 뒤」와 「결코 한담이 아니다」라는 글에는 북경여사대 사건을 둘러싼 양인위 교장과 교직원들의 행태, 그리고 학생들의 대응방식들이 세세하게 나온다. 교장 양인위가 학교 사람들을 ‘가족 구성원’이라고 이야기하면서, 학교를 아주 이상하게 운영한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위선적 방식이 너무나 유치하고 강압적이어서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게 되고, 사방이 암흑과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교육당국 종사자들과의 공방전. 각자 자신이 밀고 있는 주간 잡지를 통해, 하루 루쉰이 쓰면 바로 다음 주 그들 중 누구 하나가 쓰는, 요즘 sns 댓글이나 기사 저리가라 할 만큼 상황은 실시간 긴장감으로 넘쳐났다.

긴장감이 불쾌감이 되는 건 순식간이다. 이런 글을 계속 읽다보면 그 치졸함을 속속들이 보게 되고, 급기야 더 이상 읽기가 싫어진다. 마치 정치 기사를 보면서 신문을 덮는 기분과 유사하다. 북경여사대 사건과 같은 중대한 현안만이 아니다. 루쉰은 『화개집』 전체의 글을 통해 당시의 일을 상세히 그야말로 구구절절 기술해놓는다. 꼭 상대에 대한 비판이 아니어도, 별의별 말을 다 쓴다. 오고 간 편지의 내용, 편지가 늦어진 이유, 잡지와 신문을 내기 위한 두 사람의 견해 차이, 일단은 미루자는 시시한 결말까지 모든 과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게 다 뭔가. 이쯤 되면, 차분히 생각 좀 해보게 된다. 루쉰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던 것에 대해. 그가 이제 문학 가지고는 안 되며, 단평이어야 한다고 한 것에 대해. 문학은 장르상 한계가 있다. 『광인일기』와 『아큐정전』의 인물이 중국의 현실을 정확하게 표현한 건 분명하다. 하지만, 문학은 수 천만 명의 중국인의 얼굴을 상징화하는 작업이기에, 그 상징성에 의해 탈락되는 부분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루쉰은 바로 그 탈락에 주목했다. 중국이라는 공간과 중국인이라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금의 이 현실 속 사건의 기록이 『화개집』이다.

문학의 장치가 흐린 유리창이라면, 단평은 현미경이다. 한 발짝쯤 떨어진 곳에서 보게 하는 문학 작품과는 달리 『화개집』은 힘들다. 지치는 이유는, 글이 눈 뜨고 보기 힘든 현실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아큐를 볼 때와는 또 다른 불편함이다. 루쉰은 정말 이번에는 있는 그대로를 다 보여주기로 작정한 듯하다.

우물쭈물하고 있는 우리 앞에 루쉰은 현미경을 눈앞에 확 들이댄다. 그리고 차갑게, 그러나 애정 넘치게, 눈 뜨고 보기 힘든 구구한 현실을 읽는 사람이 다 면구해지도록 세세하게 말한다. 숨을 데가 없다. 현미경의 시선 앞에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나와 너의 치졸함이 속속들이 드러난다. 여기서 느껴지는 불편함과 수치심의 증거가 바로 ‘파레시아’의 글쓰기, ‘있는 그대로를 쓴다는 것’이다.

뭐 세상이 꼭 그렇지는 않다고, 저것은 내 모습은 아니라고. 나는 뭔가 변명거리를 찾고 싶어 한마디 우겨본다. 이를테면, 영화 <해바라기>의 대사 같은 거. “꼭 이렇게까지 해야 속이 후련했냐~~~~”

 

꼭 이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술의 궁전’에 사는 사람들에게 루쉰의 글은 문학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루쉰에게 문학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단평 역시 그가 원한 형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에게 딱히 중국 개혁을 위한 투철한 소명의식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어쩌면 그는 당시의 현실을 초기작을 쓸 때보다 더 부정적이고 암울하게 바라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그로 하여금 문학이 아닌, 단평이라는 비판적 글쓰기 방식을 선택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단평을 쓰고 싶어서가 아니다. 단평이라는 장르가 루쉰에게 왔다. 단평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단평은 발견됐다. 루쉰 자신에게서나 중국 사회 전체의 조건에서. 그것이 문학이든 문학이 아니든 간에.

휴대폰만 켜면 온갖 기사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나는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예술의 궁전’은 이미 재주도 없고 무엇보다 내가 가기 싫다. 정치와 시사를 보는 눈도 어둡다. 세상을 외면하면서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문학 작품을 쓰는 것도 아닌, 말도 아니고 글도 아닌, 어정쩡한 형태의 나의 글쓰기는 도대체…..

다만, 한가지만은 분명하다. 내가 이런 것을 써야 할 때라면, ‘아무래도 이런 것을 써야 할 때’라는 것. 시시하든 말든 내 글은, 내 몸이 세계와 사건을 만나 반응하는 정직한 시그널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라는 확신 하나다. 그걸로 됐다. “기쁘면 크게 웃고, 슬프면 크게 울부짖고, 화가 나면 마구 욕하고, 설사 모래와 자갈에 온몸이 거칠어지고,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르며, 때로 자신의 엉킨 피를 어루만지면서 꽃무늬인 양 여길지라도” 꼭 루쉰 만큼은 아니더라도 “스스로 모래바람 속에 엎치락뒤치락한 흔적”을 쓸 거라는 것. 물론 버터 바른 빵이 맛은 좋겠지만.

2019. 3. 6. 해방촌에서 미미 씀.

야매 루쉰 연구자이자 야매 철학자. 아무튼 야매.

1 thought on “버터 바른 빵이 되지 않기 위해”

  1. 나는 미미님 글이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야매의 꼬리표는 떼시는게 좋을듯 합니다. 근데 댓글 달기도 어렵군요.
    우찌 하라는건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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