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성 유지비용에 대하여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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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만 빼고 다 은행 거예요.”
한 드라마에서 집 좋다며 둘러보는 선배에게 후배가 한 말이다. 번듯한 직장에 번듯한 외양을 갖춘 그녀가 살만 한 집이라고 생각했지만 80%가 대출이라는 의미. 드라마에 등장하는 집이 대체로 그렇듯이, 내용은 가난한 자를 설정했더라도 사는 곳은 꽤나 멋스럽게 보여주고, 중산층 가정의 집을 묘사하면서도 호텔급 인테리어가 나오는 비현실적인 차원을 보여주는 것이 보통이다. 드라마니까. 드라마니까 저런 집에 사는 거지 실상은 대출 80%에, 인테리어는 엉망 3분 전이라는 점은 드러내지 말자고 모두가 암묵적 동의를 하고 있는 셈.
“집이 너무 좁고 누추해서 초대를 못 해요. 이사하고 싹 다 고쳐서 카메라 부를 게요.”
연예인들의 리얼리티 예능이 많아지면서 그들이 사는 곳이 방송에 직접 등장할 때가 많은데, 한 연예인이 극구 카메라 출입을 막으며 한 말이다. 삐까뻔쩍한 동료들의 집이 연일 텔레비전에 나오는데 자신의 집과 비교되지 않을 수 있겠나. 이후에 그 연예인은 사용하지도 않은 채 잘 정돈된 침실을 보여주며 집들이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방송용으로 꾸며놓은 집과 흐트러지지 않은 살림살이들이 연예인으로서의 그들을 대변해주고 있는 셈.
“타고 싶은 차는 어차피 못 사니까, 여기에 투자한 거죠.”
고가의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젊은 남성은 자신의 로망은 포ㅇㅇ인데, 천만 원짜리 승용차는 탈 수 없으니 차라리 폼나게 비싼 오토바이를 택했다고 한다. 천만 원짜리 승용차는 용납할 수 없고, 천만 원짜리 오토바이는 멋있어 보인다는 것은 어떤 미지의 나라에서 날라 온 논리일까. 주변의 다른 친구들과 비슷해 보여야지 더 가난해 보이거나 더 초라해 보이면 안 되기에 궁여지책 내지는 돌발 아이디어로 나온 것이 고가의 오토바이인 셈.
“정상성 유지비용이 그냥 시발비용이네.”
이 말은 얼마 전에 내 입에서 나온 말이다. 시발비용이란, 예를 들어 최저임금으로 하루 종일 일을 하다가 사장의 갑질과 고객의 갑질을 콤보로 당한 어느 날, 하루 일당 만큼의 택시비를 지불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느 알바생이 지불한 비용을 일컫는다. 기분 나쁘다고 써버리는 비용 혹은 기분이 나쁘기 때문에 보상을 받아야 하는데, 그 비용이 결국 내 피와 살을 들여 노동한 비용일 때 혹은 그보다 많을 때, 욕하면서 쓰는 비용. 아 쓰버럴 왜 사냐, 싶으면서도 내일 또 그 일터로 나가야 하니까 오늘은 좀 편하게 나를 위안해 보자, 할 때 쓰는 비용.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편해야 하고, 집은 또 안락해야 하니까. 그래, 바로 이 지점이다. 집은 안락하고 편안해야 한다. 그래서 매달 월세를 내야하는 집에 살 때도 집은 최대한 쾌적하고 편안한 상태이기를 소망했다. 그런데 집이, 그런 집이 화장실만 내 소유인데다 드러내기 위해 잘 꾸며놓는 장식품이라면, 그 집에 들어가 거실 한 귀퉁이에서 새우잠을 자야 한다면 집에서 노숙하는 것 하고 뭐가 다를까. 정리가 좀 안 되어 있고, 가구랑 가전도 10년 전부터 쓰던 것이라 세월의 때가 고스란히 묻어 있으면 그렇게나 추접스러운 일일까. 집을 사고, 집을 꾸미는 일이 어쩌다 시발비용과 동급이 되었을까.
“집을 왜 이고 살아, 집 없어도 살 방법은 많아!”
이 말 역시 내가 과거에 했던 말이다. 신도시 타운하우스에 신혼집을 마련한 친구가 자신이 ‘하우스푸어’라는 말을 했을 때, 도저히 이해안가는 타운하우스의 규모로 보며, 둘이 사는데 이렇게까지 큰 집이 필요할까, 싶었을 때. 그럼에도 남편이라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가끔 방문할 지인들과 아이가 태어났을 때 주변 부모들과의 발란스를 생각하면 집을 포기할 수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당시 그녀에게 최선이었던 타운하우스가 지금은 분양가의 50%의 시세로 떨어졌다는 사실은 입 밖으로 내지 말아야 한다.
“이 행성에서 살려면, 여기서 돈 벌려면, 이렇게 살아야지 달리 무슨 수가 있겠어.”
정상성 유지비용. 그 정상이 도대체 어느 메에 있는 기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주변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위해 하우스푸어가 되고, 카푸어가 되어 은행에 저당 잡힌 삶을 살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 혹은 멀끔한 척 괜찮은 척 사회적 수준을 유지하면서 가난을 감추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 혹은 우리 아이가 나중에 번듯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나의 생살을 찢어가며 지불해야 하는 교육비용. 혹은 여기서 더 떨어지지 않고 현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발악해야 하는 비용, 혹은 이 정도는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누리기 위해 36개월 할부로 기꺼이 지불하는 비용, 혹은, 혹은… 뭘 산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냥 나가는 비용. 모두 정상성 유지비용이다. 그리고 하우스푸어도 아니고 카푸어도 아닌 그냥 푸어로 살아야 할 때도 어김없이 들어가야 하는 저스트 최저 생활비용이 그냥 시발비용일 때의 적나라한 무력감과 집이 저래야, 차가 저래야 그나마 사람 취급 해준다는 악묵적(?) 동의에 대해서는 피차 체면 구기는 말이니 하지 않는 걸로 하자.
“저기요, 빨리 그 행성에서 도망쳐요!”
(행성 밖은 어디?)
잡지기자, 카피라이터, 에디터, 편집장 일을 했다.
글 쓰고 책 만드는 일을 간간히 하며 “공부 중” 상태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