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가스라이팅이에요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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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어이없는 말 중의 하나. 정말 어이없어서 죄송하지만, “예쁜아~”였다. 애인이 애인에게 건네는 말이었기에 참고 들을 수 있는 말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삼천년 쯤 없다. 일단 예쁘다 보다는 못 생겼다 류의 말을 자주 듣고 살았기 때문인데다 철 들고 부터는 스스로도 예쁘지 않음을 주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쁜아~”라는 저 말. 애인은 그 때 딱 한 번 말했을 뿐이지만 두고 두고 기분이 좋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왜 예쁘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야 하는 걸까. 예쁘다는 말 자체가 아니라, 내가 예쁘다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그 사실에, “지금은” 기분이 몹시 나쁘다.

“왜 예쁘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지는지”의 역사를 알면 절대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여성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여자는 예뻐야지 여자지.” “여자가 공부 잘하면 뭐하나 예뻐서 시집이나 잘 가면 되지.” “예쁘지도 않은 게 어디서 까불어.” “머리가 길어서 그나마 여자같은 년” 등등 수도 없이 많지만 유치해서 일일이 다 적고 싶지 않은, 이런 류의 말을 듣고 산다. 이 말은 지금 생각해 보면, 여성을 예쁨과 안 예쁨으로 나눠 상품과 하품으로 구분하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성이 물건 취급당하며 대상화된 숱한 서사에 “예쁘다”는 말은 언제나 천형의 언사처럼 달라붙어 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예뻐야 하는 줄 알고, 꾸미고 가꾸고 찢고 깎고 세우는 일을 많이 보지 않았는가. “예쁘다 예쁘다 해 주면 여자는 진짜 예뻐지더라”라는 말을 남성이 하는 것도 아닌, 여성이 했을 때는 어떤가. 자신에게 더 예쁘다고 해달라는 요청을 이제 여성 쪽에서 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이미 예쁘다라는 말에 정복당했고, 기만당한 채로 그게 맞고 옳다고 여기게 됐다는 의미가 아니면 뭘까. 꾸미고 가꾸는 일이 이제 누군가에게 예뻐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쁜 것은 정상이고, 당연하다”는 인식을 스스로 하게 된 것이다. 저런 말들을 수도 없이 듣고 살아서 예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상태. 예쁘다는 말과 그런 환경에 충분히 껴 맞춰진 상태. 대상화가 결국 주체화가 되어버린 상태.

“그게 당연한 줄 알았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 아닌가. 가스라이팅 학대 피해자들이 본인들이 피해당한 사실 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결국은 쏟아내는 말들이다. 가스라이팅 : 상황을 조작하는 등의 방식으로 타인의 판단력을 잃게 만드는 행위.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거짓말, 사실에 대한 부정, 모순된 표현, 비난 등을 통해 상대방 스스로 자신의 판단력을 의심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사람은 점차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며 가해자에게 정신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가해자는 이런 심리적 상황을 이용해 타인의 행동을 통제하고 지배력을 행사한다.

비슷한 말로 거의 비슷한 효과를 보는 것 중에 “착하다”도 있다. “착하다”만큼 만병통치약도 없다. 예쁘지 않더라도 착하기만 하면 어느 정도 패스가 가능하다. 그러나 “얼굴만 예쁘면 다냐, 마음이 고와야지 여자지”라는 부분. 예쁜 여자들이라고 사는 게 편한 건 결코 아니다. 거기에 착함 패치를 달고 있어야 비로소 인정받는다.(물론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재산 내지는 물건 내지는 액세서리로) 이런 얄궂은 상황이라니. 만병통치약인 것 같지만 만병의 근원이다. 아이야, 넌 참 착한 아이구나! 늘 얘기하지만 여기에는 “내 말을 잘 들으니까”가 생략되어 있다. 앞으로도 착하다는 말을 들으려면 말을 잘 들어야 한단다. 착하지 않으면 채찍, 착하면 당근. 그렇게 “착하다”는 말로 길들여져 “착한 시민”이 되는 과정이 우리 사회의 “사회화” 아니던가. 부모의 말을 잘 듣고, 교사의 말을 잘 듣고, 남편의 말을 잘 듣고, 상사의 말을 잘 듣고, 국가의 말을 잘 듣고. 그렇게 착한 기계로 살아온 사람들에게 착함은 언제나 무기가 된다. “나는 정말 당신의 말을 잘 들었는데, 왜 나한테 이러세요?” 이런 상황에서는 정말 묻고 싶다. 착해서 인생살이 진짜 편안했는지. 말 잘 들어서 집채만한 당근 받았는지. 아주 어린 아이에게 ‘굳’을 알려주는 것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가지만, 다 큰 성인한테 “그 사람 진짜 착하지.”라는 말을 칭찬이라고 하는 건지, 정말 알 수가 없다.

예쁘다는 말, 착하다는 말은 칭찬인 것 같지만 아주 교묘하고 지리멸렬한 가스라이팅이다. 예뻐야만 할 것 같고 착해야만 할 것 같은 사람을 만드는 주문일 뿐이다. 상대방을 약자로, 자신을 강자로 셋팅하는 수많은 말들 중에 가장 상용화, 통속화되어 있는 가면의 침술이다. 호감의 표현이라고, 칭찬의 말이라고 건네는 아주 무례하고 저열 한 전술. 하지만 누군가 나를 은근 컨트롤해보겠다고 던지는 저 따위 말에 지금도 속절없이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주지해 보자. “예쁜아~” 오늘도 우리는 분명 착하다, 예쁘다, 잘생겼다 등 외모와 인성을 가위질하는 말을 쉽게 주고 받았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가스라이팅 가해자이자 피해자이다.

잡지기자, 카피라이터, 에디터, 편집장 일을 했다.
글 쓰고 책 만드는 일을 간간히 하며 “공부 중” 상태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