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어떻게 돈이 되는가

[ 기픈옹달 ]

:: 경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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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싫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쓰면 된다고 말하지만, 그 말에는 얼마간의 기만이 담겨 있다. 글이란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말과는 다르며, 시간을 때우기 위한 요깃거리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나. 최대한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다 하더라도 어쨌든 최소한의 논리와 구성, 내용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 말이나 쓴다고 글이 되지는 않는다. 

글이란 글이 될만한 것을 붙잡아 문자화 시키는 작업이다. 따라서 글쓰기에는 본질적으로 얼마간의 기만이 담겨 있다. 이 기만을 감내하고 마침표를 찍어야 글이 될 텐데, 자꾸 미끄러져 내린다. 말을 찾았다가도 제 것이 아닌 것 같아 이내 내던져 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진실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싶지도 않다. 진실은 순간의 단면으로만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쪽의 진실은 저쪽의 거짓이며, 아까의 진실은 지금의 거짓이 되어버린다. 이것은 필연이다. 진실이란 거짓의 거짓을 다르게 부르는 말일뿐.

글쓰기가 싫다. 문제는 거짓과 진실, 기만과 솔직 사이에 있지 않다. 도리어 현재의 문제, 지금의 욕망이 던지는 질문 때문이다. 그걸해서 무엇하려고? 이 질문은 아주 오래전 어머니가 던진 질문과 맞닿아 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어머니는 이렇게 되물었다. 그렇게 돈이 안 되는 것을 해서 무엇하느냐고.

하루는 문득 글의 값은 얼마일까 궁금해서 계산기를 두드려보았다. 남의 주머니 사정은 알 수 없는 일이라 내 사정을 헤아려보기로 했다. 다행히 개인 저작 한 권이 있어 계산이 쉬웠다. 

덧셈과 나눗셈 그리고 곱셈. 계산해보니 대충 4,000부 정도의 인세를 받았다. 여기서 하나 깜짝 놀랐는데 재판을 찍기 힘들다는 출판 시장에서 4,000부 가량이나 찍었다는 점이다. 저자 인세 10%, 약 400여 만원. 적지 않은 돈이지만 나눗셈이 필요하다. 4년간, 400여 만원이니 1년에 약 100여 만원이 주머니로 들어온 셈이다. 생계가 가능하려면 그런 책을 몇 권이나 써야 하는 걸까? 계산하려다 그만두었다.

여기서 또 하나의 나눗셈. 총 400여 만원을 벌어들인 이 책은 약 12만 자 정도 된다. 글자 하나당 약 40원 정도의 값인 셈. 지금 이 글이 대략 3,000자니 이 글 한 편의 값을 계산하면 일만 몇 천원 정도가 된다. 최저시급으로 계산해보자. 최저시급이 8,000원 조금 넘으니 이런 글은 한 시간 반 정도에 끝내야 수지타산이 맞는다. 몇 시간이고 끙끙 붙잡고 있다면 최저시급보다 미치지 못하는 노동을 하는 거다. 엉뚱한 계산이지만 이게 직면한 현실이다. 그나마 글이 꼬박꼬박 팔린다는 가정에서야 가능한 말이기도 하다. 

가끔 글의 내용과 상관없이 제목만 둥둥 떠다니며 꾸준히 생각나는 경우가 있다. 요즘 나에게는 ‘지식이 곧 죄악이다’라는 말이 그렇다. 책장에 쌓여 있는 수많은 책을 보면 그 말이 떠오른다.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은 얼마나 많으며, 열매 맺지 못한 지식은 물론이거니와 망각해 버린 것은 또 얼마나 많은가. 글을 구입하는데도 그렇게 지혜로운 소비자는 아니구나.

각설하고, ‘지식이 곧 죄악이며 부채이다’라고 되뇌며 일거리 삼아 책장의 책들을 팔아치우고 있다. 인터넷 서점에 팔아치우려니 너무 헐값에 내놓는 것 같아 인터넷 서점의 헌책 판매자로 책을 판매하고 있다. 이른바 ‘회원에게 판매하기’ 고작 몇 백원하는 책부터 새 책에 버금가는 가격까지. 시장 논리에 맞춰 책값도 정해본다. 

신기한 일은 꼬박꼬박 한 두권씩 책이 팔린다는 점이다. 그렇게 팔린 게 십 수만원이다. 다시 한번 나눗셈. 대충 계산해보니 권당 3,000원 가량 벌었다. 여기서 번뜩이는 현실. 내가 저자 인세로 벌어들인 돈이란 권당 천 몇 백원. 중고책의 채 절반이 안 되는 돈이다. 이는 중고로 거래된 책의 역저자에게도 해당하는 말일 테다. 내가 몇 천원을 버는 동안 그들은 동전 한푼도 만져보지 못했다.

글은 어떻게 돈이 되는가? 이것이 과정에 대한 질문이 아님을 언급해두자. 글은 어떻게 실효성 있는 생산이 되는가? 글쓰기는 어떻게 생계를 위한 노동이 되는가? 글이란 그저 어음이나 부도수표와 같은 걸까? 한정없이 지불이 미뤄져 언제 주머니로 들어올지 기약할 수 없는. 혹은 그간의 수고나 노동이 어느 정도든 상관없이 지불될 수 없는. 

그래도 마법이 있다. 글이 어떻게 돈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매매하는 행위는 돈을 남긴다. 인터넷 헌책방을 계속할 수 있다면 글을 쓰는 것보다 더 많은 소득을 가져다주겠지. 신기한 마법은 더 있다. 중고 거래를 하면서 책을 판매한 것과 비슷한 정도의 비용이 택배 회사에 지불되었다는 점. 또한 만만치 않은 비용이 수수료로 나갔다는 점. 거래당 택배 회사가 2,500원을 가져가고, 인터넷 서점은 10%의 수수료를 떼어간다. 결국 진정한 승리자는 따로 있다.

놀라운 마법의 비밀을 하나 더 파해치자. 동네에 연예인이 책방을 열었다 닫았다. 건물을 사서 책방을 열고, 책방을 닫으면서 건물을 팔아 치웠다. 기사에 따르면 이 책방은 7억 7천만원의 이익을 남겼단다. 약 3년 정도 문을 열었으니 해마다 약 2억 5천 이상을 벌어들인 셈이다.

누군가는 지혜로운 ‘투자’라 하지만 전후사정을 고려하면 그렇지 않다. ‘책방’을 열었기 때문에 그렇게 비싸게 건물을 되팔 수 있었을 테지. 세간의 욕을 먹지 않으면서. 음주 운전으로 물의를 일으킨 뒤, 그는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고 책방을 열었다. 만약 술집을 열었다면 어땠을까? 옷가게였다면? 그냥 투기였다면? 

책방 덕택에 그는 다행히 방송으로 복귀했다. 방송일로 바쁘다며 책방은 제대로 열지도 않았다. 그래도 책방을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더라. 그렇게 수억이 넘는 돈을 남겼다. 그 소식을 듣고는 우스갯소리로 세상에서 가장 비싼 책을 판 책방일 거라 이야기했다. 

글은 어떻게 돈이 되는가? 사실 이 말은 답을 찾을 수 없는 어리석은 질문일지도 모른다. 더 적절한 질문으로 바꾸자. 책은 어떻게 돈이 되는가? 책을 사고파는 행위가 부를 만든다. 책을 내놓은 작가라고 하면 무형의 사회적 부라도 만든다. 그러니 너도나도 앞다투어 이런저런 책을 내놓겠지. 책은 좋은 명함이다. 게다가 책방을 열면 생각지도 못한 부가가치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글쓴이는 쉬이 망각되어 버린다. 글쓰기는 어느 저울에도 올려놓을 데가 없다. 그런데도 찢어버리고 불태워 버리면 금세 사라질, 삭제 버튼 하나면 세상에서 지워질 것을 붙잡고 무엇하고 있는 걸까? 지금 이 시간, 나는 무얼 하는 걸까. 이 기만의 행위로 무엇을 붙잡겠다고. 

마침표를 찍자. 세 시간 정도 붙잡았다. 전후에 끙끙거린 시간은 계산하지 말자. 최저시급의 기준에 따르면 약 25,000원 가량의 노동이 투여되었다. 이 돈을 언제건 돌려받을 수 있을까? 아니, 그런 생각은 집어치우고 나를 위해 25,000원 정도 썼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젠장, 이런 허무를 얻는데 부채까지 늘었다니! 도무지 글을 쓸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2019.04.30.

+ 05.18 밤. 살짝 다듬었다. 당연히 보름이 넘도록 이 글은 한푼의 화폐도 벌어들이지 못했다. 약 1시간의 노동이 더해졌다는 사실도 살짝 언급해두자. 

독립연구자.
黥치는 소리 혹은 經치는 소리, 
아니면 磬치는 소리 뎅뎅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