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치마 입고, 너나 해!
[ 삼월 ]
:: 밑도 끝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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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하나의 그림이 있다. 그림 안에는 두 명의 여성과 두 명의 남성이 등장한다. 한 명의 여성은 거의 옷을 입고 있지 않으며, 나머지 한 명은 그마저도 아예 입고 있지 않다. 19세기 프랑스 회화에서 여성의 누드는 흔한 소재였다. 그런데도 이 그림은 많은 조롱과 함께 살롱에서 낙선했다. 낙선전에 이 그림이 걸렸을 때는 다시 한 번 관심을 받으며, 논쟁의 불씨가 살아났다. 이 그림의 제목은 ‘풀밭 위의 점심식사’, 많은 이들이 이 그림 때문에 화가 에두아르 마네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옷을 입지 않은 두 명의 여성이 등장하는 그림이 그토록 논란이 되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여성들과 함께 등장하는 남성들이 여성들과는 다르게 옷을 제대로 갖추어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두운 숲속 연못가에서 한 명의 여성과 두 명의 남성이 식사를 즐기고 있다. 여성은 아예 옷을 입고 있지 않으며, 남성들은 구두와 모자, 지팡이까지 갖춘 차림새다. 저 멀리 연못 안에 몸을 담근 헐벗은 여인은 원근법을 무시하고 크게 그려져 있다.
네 사람 중 한 명, 옷을 입지 않고 남성들 사이에 앉아있는 여인이 그림 밖의 화가, 혹은 관람자와 시선을 맞추고 있다. 이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은 모두 그 여성과 한 번은 눈이 마주칠 수밖에 없다. 그 시선 때문일까? 이 그림을 살롱에서 마주한 프랑스의 예술계 인사들은 불쾌감을 느꼈다. 그림 속 여성의 시선이 귀족 흉내를 내는 자신들 부르주아의 일상을 꿰뚫어보고 있다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단지 옷을 입지 않은 여성과 옷을 입은 남성을 함께 그렸을 뿐인데, 그림은 보는 이들을 불쾌하게 만들고 충격에 빠뜨렸다.
마네의 그림만큼 충격 속에서 지난 추석을 강타한 무대가 있었다. 8년차 걸그룹 AOA가 한 경연프로그램에서 보여준 무대였는데, 연휴 동안 이 무대 때문에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제법 시끄러웠다. AOA는 이 무대에서 남성들이 입는 정장과 비슷한 옷을 입었다. 반면 뒤늦게 무대에 등장한 남성 댄서들은 짧은 치마와 등이 훤히 파인 상의를 입었다. AOA 멤버들의 화장이 차분하고 춤도 절제되어 있는 반면, 남성 댄서들의 화장은 화려했고, 춤은 역동적인 보깅댄스였다. 보깅댄스는 뉴욕 할렘가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여성스러움을 과시하는 춤’이라는 설명이 흔하게 따라붙는다.
이 무대가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기억에 남게 된 이유는, 걸그룹 멤버들과 남성 댄서들의 바뀐 역할 때문이다. 대부분의 무대에서 여성 가수나 댄서들은 화려한 화장에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는다. 남성 가수나 댄서들 역시 화려한 화장에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을 때가 있지만, 대체로 여성 가수나 댄서보다 많은 노출을 하지는 않는다. AOA의 무대는 그 역할 뒤바꾸기를 통해 무대 위에서 고정되어 있던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강렬하게 깨닫게 해 주었다. 그 뒤바꿈 자체만으로도 충격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무대를 본 많은 여성 관객들은 환호했다. 여성들이 지금껏 무대 위에서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가 이 무대를 통해 분명히 드러났다. 한 공간에서 누군가는 몸을 노출하고 진한 화장을 해야 하지만 누군가는 그렇지 않을 때, 이것이 단순히 패션의 문제라기보다 권력의 비대칭에서 오는 문제일 수 있음을 많은 이들에게 직관적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한편으로 남성들의 반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걸그룹 멤버들이 이런 무대를 기획했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한 멤버가 활동기간 내내 성희롱에 시달려왔다는 사실을 밝힌 인터뷰가 회자되면서, 더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얻기도 했다.
물론 어떤 남성들은 이런 현상에 불쾌감을 느꼈다. 마네의 그림 속 벌거벗은 여성과 눈이 마주쳤을 때처럼, 불쾌감 속에서 조롱과 비난을 쏟아 부었다. 비난은 걸그룹 멤버들의 과거로 향했다. ‘먼저 선정적인 마케팅을 펼친 건 너희였잖아.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잖아. 우리는 너희의 마케팅을 소비했을 뿐 아무 죄가 없어.’ 공교롭게도 이 무대가 있기 바로 얼마 전 AOA는 짧은 치마를 입고 나와 많은 이들이 ‘섹시하다’고 말하는 무대를 꾸몄다. 마침 노래 제목도 ‘짧은 치마’였다.
지금까지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노력해왔던 걸그룹 멤버들이 일침을 가하자, 일부 남성들은 당황했다. 그들에게 AOA는 ‘짧은 치마’를 입고 춤을 추는 여성들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바지를 입고 무대에 올라 남성들에게 ‘너나 해!’라고 일갈을 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자신들이 입던 짧은 치마를 남성 댄서들에게 입히고, 카메라를 보며 뿌듯하게 웃는 일도 마찬가지로 해서는 안 되었다. 그런데도 그런 일이 일어나자, 그들은 AOA가 페미니스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선을 변경했다고 믿고 조롱하기 시작했다.
무대에서 한 번 바지를 입었다고, 짧은 치마를 입었던 AOA가 정말로 노선을 변경한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AOA의 모든 멤버들이 다시는 짧은 치마를 입지 않고, 바지를 입고 나와 절도 있는 춤만 보여줄 거라고 믿는 걸까. 물론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누구도 AOA 멤버들이 앞으로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춤을 출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AOA 멤버들은 앞으로 남성을 유혹하는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남성을 비난하는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개인의 삶이 하나의 성격에 고정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의 삶 역시 그럴 것이다.
짧은 치마를 입는 여성과 바지를 입는 여성, 남성을 유혹하는 여성과 남성을 비난하는 여성은 사실 구분되지 않는다. 이 모든 특성들이 한 개인 안에 공존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여성들을 두 부류로 확고하게 구분하려는 남성들이 있다면, 때로 예상치 못한 충격 속에서 불편한 시선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마네의 그림 속 여성처럼 헐벗은 여성이 보내는 기묘한 냉소와 난데없이 날아드는 과격한 비난 역시 피할 수 없으리라.
삼월에 태어나서 삼월.
밑도 끝도 없이, 근거도 한계도 없이 떠들어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