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①_우리는 우리 몸을 너무 모른다

[ 지니 ]

:: 인문학, 아줌마가 제일 잘한다!

//

대장내시경을 하는 남편의 보호자로 병원에 따라갔다. 남편이 들어가고 대기실 소파에서 두 시간을 앉아 있는데 귀에 쏙쏙 박히는 목소리를 가진 간호사가 5분에 한 번씩 사람들에게 같은 대사를 읊고 있었다. “말간 물이 나올 때까지 변을 보셨죠? … 탈의실에 들어가 팬티까지 다 벗고 동그란 구멍이 뒤로 오도록 바지를 입으시고, 부를 때까지 앉아서 대기하세요.” 오전 근무가 끝나기도 전에 간호사의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저 간호사는 3년 인지 4년인지 간호학과에서 공부를 하면서 저런 일을 하리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저 일이 간호학이니 병리학이니 약물학이니 하는 공부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생각했다. 나중에 남편한테 얘기했더니 안 그런 일이 어딨냐 한다. 그러네.

그 사이에 사람들은 4인이나 5인이 한 조가 되어 내시경실로 들어가고 또 30분이 채 안 된 후부터 순서대로 밖으로 나왔다. 수면을 안 한 사람은 또랑또랑한 채 밖으로 나왔다. 틀에 밀가루풀 따르고 팥앙금 짜넣고 앞뒤로 돌려주다 팅!하고 튀어나오는 붕어빵처럼 그렇게 사람들은 연이어 들어가고 나왔다. 내시경을 끝내고 15분 쯤 후에 다시 간호사의 호출이 있었다. 남편의 대장에서 세 개의 용종을 제거했다며 위치를 점찍은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 중 두 개를 조직검사 의뢰할 것이며 결과 보러는 일주일 후에 오라고 했다.

근데 애초에 남편은 내시경을 하러 병원을 찾은 게 아니었다. 변에 피가 비친다며 갔던 것이다. 항문주위에 빨갛게 약간 뭐가 고여 있다고 했고 치질일지 모른다고도 했고 그러나 일단 대장내시경을 하자고 했단다. 대장에서 용종이 발견되었고 제거해서 잘 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나는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용종 제거는 내시경을 하다 보니 발견한 거였지, 그게 변에 피가 나오는 것의 원인을 밝혔다거나 치료를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상처는 손가락에 있는데 팔뚝에 난 사마귀를 떼었다고 기뻐하는 것과 이게 다른 건가? 현대 의학은 대증요법이라고 하는데 증상에 대한 치료나 제대로 하는지 의심스럽다. 요즘 병원은 치료를 보류하고, 이런 저런 검사를 하느라 시간을 보낸다. 치료는 그 시간을 보내는 동안 몸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몇 번의 경험이 있다.

몇 주 전 엄마가 어지럽다며 새벽같이 호출한 일이 있었다. 십여 년 전 앓았던 이석증이 또 왔다고 판단한 엄마는 나를 대동하고 그 당시 갔던 병원에 갔다. 의사는 엄마를 눕히고 머리를 이리저리 몇 번 돌려보며 이석증일 수도 있고, 바이러스 때문에 생긴 무엇일지도 모른다며, 소견서를 들려 우리를 종합병원으로 보냈다. 거기 의사는 소견서를 읽는 듯하더니 머리 MRI를 찍고 결과를 보자 했다. 그 사이 점심시간도 지나고, 엄마는 무슨 처치실로 들어가 건장한 젊은 선생들에게 아파서 그만하라고 해야 할 정도로 머리 돌림을 당했다. 그리고 다시 의사 앞에 앉았다. 이석이 떨어져 나온 건 맞는데 제자리로 들여보내진 못했단다. MRI는 괜찮다고 했다. 괜찮다고. 그리고 일주일 후에 다시 오란다.

병원 갈 때마다 화를 내고야 마는 나는 이번에는 좀 참아야지 했었다. 그런데 못했다. 괜찮은데 왜 일주일 후에 다시 와야 하느냐고 내가 물었고, 계속 컴퓨터 모니터만 보던 의사는 불쾌하다는 듯이 그러면 오지 말라고 했다. 소견서 못 봤냐, 우리가 여기 온 이유는 저쪽 병원에서 바이러스 어쩌구저쩌구 해서 온 거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고, 이석도 제자리로 돌려보내지도 못했고, 그러면서 MRI는 왜 찍었냐. 그리고 또 오라는 건 뭐냐! 나는 무안해하는 엄마를 쳐다보지도 않고 따졌다. 의사의 마지막 말은 기가 막혔다. 엄마가 연세가 있으니까 앞으로도 이석은 계속 빠져 나올 거다. 그리고 빠져나온 이석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녹아 없어질 것이다!? 저런, 똑같다! 십 년도 더 전에 우리 딸이 애기였을 때, 목에 생선가시가 박혀서 이번처럼 병원 몇 개를 전전했었다. 애기 목구멍에 이상한 기구를 넣어서 토하고 눈물 콧물 다 쏟게 하고는 결국 못 빼내고 의사가 마지막 한 말이 그거였다. 시간이 지나면 녹아 없어져요!!

신기하기도 하고 어처구니없게도 엄마는 이석이 제자리로 들어가지도 않았다는데, 어지럼증이 덜해지면서 컨디션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애기였던 우리 딸도 그날 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잘 잤다. 이 정도면 병원이 우리의 몸에 대해서, 병에 대해서 뭘 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집안 어른들은 병 키우지 말고 조금만 이상하면 바로바로 병원을 가라고 한다. 의료보험공단의 정기검진도 빠짐없이 하라고 한다. 안 하고 있다가 큰 병 걸리면 보상도 안 해준다드라 덧붙이면서. 겨울이 시작되면 독감예방접종도 꼭 하라 이르시고, 딸들에게는 유방암, 자궁암 예방접종도 해줘라 하신다.

난 다 안 하고, 안 해줬다. 무슨 특별한 신념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동양의학에서 말하는 몸의 자연치유능력을 오롯이 믿는 사람이어서 그런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럼 뭔가? 귀차니즘이다. 오래오래 기다리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받는 검사가 싫다. 그리고 덧붙이면 그 결과가 대개 허무하다. 원인을 얘기해주지도 못하고, 검사에서 발견되지 않으면 모든 증상을 심인성으로 그러니까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처방도 아닌 처방을 내리면서 약까지-소화제나 비타민이라도- 처방하는 그 가짜가 거북스럽다.

나에겐 십 년도 넘은 지병이 있다. 왼쪽 발 옆구리에 저 혼자 곪았다가 딱지져 없어지고 다시 시작되기를 반복하는, 무좀도 아니고 건선과도 다르다는 불치병이다. 일 년에 한두 번 알러지성 가려움증 때문에 가는 피부과가 있다. 젊은 여의사다. 그녀는 ‘내 발 이거 못 고치지요?’ 물으면 애석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네~’한다. 난 그래서 그 병원을 가끔 간다. 발은 안 되지만, 가려움증에 대증이라도 할 수 있는 항히스타민제를 처방받으러.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많이 오래 쓰면 좋지 않은 그러나 가려워서 잠을 못 잘 정도니 며칠쯤은 사용하며 일단 잠은 잘 자자고 우리는 합의를 한다.

치료가 되지 않는 두 개의 병을 나는 갖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병이라고 할 수 있나? 십년 넘게 내 몸에 붙어있다면 그건 병이라 하고 배제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냥 내 몸인 거 아닐까? 독감예방접종을 하지 않는 나는 감기 한번 안 앓고 한 해를 나는 경우도 많다. 매년 빼놓지 않고 식구대로 하는 우리 어머님 댁은 감기로 자주 골골하고 독감도 반드시 치른다. 예방접종 덕분에 약하게 지나간다 하시며.

뭔가에 놀아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정기검진도 그렇다. 아직 자각증상도 없는데 미리 잘라내고 도려내고 너무 수선스럽다. 이 혹이 병인지, 몸의 일부인지 어떻게 알까? 저절로 사라질지, 몸과 같이 살아갈지 어떻게 알까? 용종을 떼어냈다는 말을 듣고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그런다. 얼마 전 아랫배가 쿡쿡 쑤시던 게 그것 때문이었나보다고. 결과론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 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얼마 없다. 몰라서 무조건 믿거나, 몰라서 안 믿기를 기본으로 하는 나나, 별로 다른 태도도 아니다.   

지니

생각을 넘어가지도 않고
생각에 못 미치지도 않는
말을 찾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