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밥의 가격

[ 삼월 ]

:: 밑도 끝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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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밥, 집에서 만든 밥. 1인가구가 늘고, 모두가 바쁘게만 사는 세상에서 집에서 만든 밥을 먹을 기회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우고, 한참 재료를 손질한 뒤 요리에 돌입해서, 요리를 마치고 밥상까지 차려내는 데는 족히 몇 시간이 소요된다. 요리가 직업이나 취미가 아닌 이상 누군가 이 길고 힘든 작업을 기꺼이 하는 일이 자연스럽지는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수하게 많은 집 밥을 먹으며 살아왔다.

24시간 운영하는 식당에서는 언제든 따끈한 식사를 할 수 있고, 골목마다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편의점도 있다. 식당에는 요리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인력이 있는데다가, 요리마다 차별화된 레시피와 화려한 플레이팅으로 우리의 시선을 끌고 있다. 편의점의 강점은 짧은 시간에 저렴한 가격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식당과 편의점이 거리에 널려있는데도 우리는 때로, 자주 집 밥을 떠올린다.

식당과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음식들에는 각각 가격이 있다. 요리의 재료, 요리방식의 난이도 등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음식을 구매하는 이들은 대부분 거기에 매겨진 가격에 수긍한다. 요리는 어떤 재료에 인간의 노동이 더해진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집 밥에도 가격을 매길 수 있을까? 집 밥, 집에서 누군가의 노동이 재료에 더해진 결과물.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 밥에 가격을 매기지 않는다. 화폐의 흐름을 자본주의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본다면, 가정은 그 흐름이 급격히 희미해지는 공간이다. 가족들은 서로를 위해 대가 없는 노동을 제공하며, 가정을 유지시킨다. 자본주의는 사실 그 대가 없는 노동을 통해 유지된다.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건 화폐의 원활한 흐름이 아니라, 화폐조차 이용되지 않는 공간이다. 자본주의의 가장 밑바닥에서 임금도 받지 않고 이루어지는 대가 없는 노동들이 이렇게 자본주의를 떠받치고 있다.

그런 노동이 아직 어렸던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키워서 다시 노동자로 만들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자랐지만, 그 대가 없는 노동에 대해 함부로 떠들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쭉 그래왔다. 굳이 안 되는 이유를 꼽자면, 우리가 그 노동에 납득할 만한 가격을 매길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집 밥의 가격을 얼마로 매겨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차마 가격을 매길 수 없다는 말로 감사의 인사를 대신해왔다.

최근 그 집 밥에 용감하게 가격을 매긴 이가 나타났다. 혼자 살고 있는 남성으로 추정되는 한 인물이 온라인에서 자신에게 집 밥을 제공해 줄 이를 구하고 있었다. 편의상 이 사람을 ‘집 밥 구매희망자’라 부르자. 우리의 집 밥 구매희망자는 집 밥이라는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임의로 가격을 매겼다. 그가 책정한 가격은 한 끼 당 6,500원. 밥과 국과 반찬 두세 가지를 그가 준비한 도시락에 담아 매일 아침 일곱 시까지 그의 집 앞에 배달하는 노동까지 포함한 가격이다.

많은 이들이 집 밥 구매희망자의 글을 읽고, 점잖게 타이르기 시작했다. 요즘 음식 재료비가 비싸 이 가격으로는 재료비도 충당하지 못한다는 충고가 대부분. 가끔은 그가 준비한 도시락이 지나치게 크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집 밥 구매희망자는 그런 충고에 맞서, 나름의 논리를 내세웠다. 집에서 식구들끼리 먹으려고 하는 음식을 조금 얻어먹으려는 것뿐이니, 이 정도 금액이면 적당하겠다는 답변이었다. 일부는 냉동도시락을 주문하여 아침마다 데워먹으라 충고하였으나, 그는 공장에서 만든 밥이 아니라 집 밥을 원한다며 한사코 충고를 거절하였다.

집 밥 구매희망자와 그에게 충고하려 댓글을 달았던 이들의 대화는 며칠 새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달구며 퍼져나갔다. 아이와 남편을 위해 무더위에도 집 밥을 생산하던 여성들이 누구보다 이 이야기에 분노를 표했다. 집 밥 구매희망자는 집 밥을 하나의 상품으로 규정하고 가격을 책정하였으나 구매에 실패했다. 아무도 그가 원하는 가격에 집 밥이라는 상품을 판매하려고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 밥 구매희망자의 어리석음은 터무니없는 가격 책정에서 드러난다. 그는 집 밥이라는 상품의 가격을 책정하면서, 그 상품을 생산할 누군가의 인건비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에게 집 밥은 대가 없이 제공되는 노동으로 생산되므로, 그는 자신이 책정한 금액보다 더 비싸게 구매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보았다. 누군가가 자신의 가족에게 무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여 집 밥을 만들듯이, 생판 모르는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 주어야 한다고 믿은 탓이다.

이 어리석음을 그냥 비웃고 넘겨야 할까. 어쩌면 그는 무상노동으로 집 밥을 생산하듯, 우리 사회가 많은 이들의 무상노동을 통해 유지되고 있음을 간파했던 것이 아닐까. 그의 말에 따귀라도 맞은 듯 많은 이들이 불쾌함과 노여움을 느꼈던 것은, 그의 말이 터무니없어서가 아니라 바로 정곡을 찔렸음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6,500원에 집 밥을 아침 일찍 제 집으로 배달해 달라는 당당한 요구 앞에서, 사실은 그런 요구가 아주 익숙하고 잦았으며 매우 친밀한 형태로 반복되어왔음을 인정해야 했던 게 아닐까.

어쩌면 ‘집 밥 구매희망자’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그런 뼈아픈 인정을 가능하게 해 준 고마운 사람이다. 그를 통해 우리는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고통스럽게 깨달았다. 그가 만약 혼자 사는 남성이고 결혼을 원한다면, 그는 결혼을 통해 집 밥을 무상으로 생산해줄 이를 구할 수 있게 된다. 어디 집 밥뿐이랴. 자녀 출산과 양육, 청소와 세탁, 재정 관리, 자신의 늙은 부모에 대한 돌봄을 포함한 모든 가족에 대한 정서적 돌봄, 가능하다면 돈을 버는 경제활동까지. 역사상 이 모든 일을 한꺼번에 해내는 노예는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남성들이 왜 돈을 주고 신부를 사서라도 결혼을 하려 하는지 명백히 알 수 있게 되는 순간이다.

삼월

삼월에 태어나서 삼월.
밑도 끝도 없이, 근거도 한계도 없이 떠들어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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