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편집 인생 #2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 책장을 정리하다가 “굳이 의미를 찾지 말자. 인생은 욕망이지 의미가 아니다.”라고 써놓은 메모를 발견했다. 손글씨로 꾹꾹 눌러 써놓은 메모. 아니 내가 이렇게 멋진 말을? 역시 착각이었다. 찰리채플린 씨께서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신 말씀이었다. 멋진 글들은 이미 전 세대의 멋쟁이들에게 저작권이 있다. 습관인 것인지, 나는 읽고 있는 작가의 글투를 곧잘 따라한다. 그래서 잘 쓴 작가의 글을 뭉텅이로 읽는 습관이 있다. 따라하고 싶기도 하고, 따라해야 늘 것 같기도 해서였다. 그러다 보니 누구 글인지 … Read more

글쓰기는 거짓이다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 활자로 인쇄되어 나온 것들, 책이나 신문에서 보는 모든 글들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아니 신뢰한다는 의식조차 없이 그대로 믿고 외우고 사유의 근거로 채워 넣었다. 픽션이라고 대놓고 써놓은 이야기에서조차 일말의 진실을 찾아내어 신뢰의 장에 밀어 넣었다. 진실을 활자로 전하는 것이라 믿었던 저자, 철학자, 기자 등의 이름은 명예를 가질 만한 것으로 자동 분류됐다. 활자로 나온 것은 다 진실? 언제부터인가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여전히 활자를 통해 정보를 찾고, 근거를 메우고, 비판받아 요동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지만 … Read more

기어코 의미를 만들어내고야 마는 병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라는 질문이 있다. 자주 대면하게 되는 질문이다. 타인에게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자주 묻는다. 이게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물어봤자 돌아오는 건 기존의 닳고 닳은 의미부여에 대한 답일 뿐인데도 계속 묻게 된다. 이익이 있는가, 발전적인가, 교훈이 되는가 등 의미부여는 묘하게도 발전주의적 사고와 연결되어 있다. 재미있는가, 아름다운가, 타인을 돕는가 등 조금 다른 결을 가진 의미부여도 있지만 결국은 유의미 속에 들어가 있다. 의미없음의 자리는 늘 가치없고, 부끄럽고, 초라하고, 돈 … Read more

1초짜리 우쭐함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 얼마 전 후배로부터 나와의 만남이 본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놨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좋은 의미로 한 얘기였다. 몇 초간 우쭐했다.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그 사실이 나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약 1초짜리 우쭐함 외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 곧 밝혀진다. “좋은 의미”라는 말 앞에는 꼭 “현재까지는”이라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새옹지마의 사례를 굳이 가져올 필요도 없다. “사랑해”라는 말에는 “지금은”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는 것이고, “넌 … Read more

글쓰기 세미나 [파르티잔]을 시작하며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 글은 원고료와 마감이 주어졌을 때 써지는 것이다. 소재가 없어도, 주제가 없어도 써지는 것이 글이다. 그렇게 써진 것도 글이라면 말이다. 원고료가 많거나 적거나 결국에는 마침표를 찍어 보냈고, 마감이 코앞에 닥치면 신들린 듯이 유려한 문장을 쏟아내는 일도 종종 있었다. 나의 글쓰기 시냅스는 돈과 시간을 연료로 움직이는 영특한 아이들이다. 클라이언트가 흡족해 하는 카피, 유행어와 위트있게 접목된 트렌디한 문장,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스토리텔링!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쓰고 싶은 문장이 아니라 누군가가 원하는 … Read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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