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그럴싸한 거짓말의 세계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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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는 이야기를 아주 좋아한단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구식 이야기에서부터 24시간 스트리밍이 가능한 신식 넥플릭스까지 이야기의 세계는 끊이지 않고 이어져왔다. 한 친구는 넥플릭스를 두고 “나를 파괴하러 온 나의 구원자”라고 표현했다. 일상이 무너지지만 그렇다고 끊을 수도 없을뿐더러 유일한 낙이라는 의미였다. 파괴자이자 구원자인 이야기의 세계는 그 무궁무진함으로 틈없이 인간을 유혹한다.

정확히 말하면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좌뇌라고 한다. 뇌과학자가 아닌지라 뇌에 대한 어떤 설명도 듣고 까먹고 읽고 잊어버리기를 반복하게 되는데, 잊지 않고 기억하는 뇌실험이 한 가지 있다. <하마터면 깨달을 뻔>이라는 책에서 소개된 ‘쪼개진 뇌(split brain)’ 실험이라 이름 붙여진 “이야기”다. 인간의 뇌는 좌뇌와 우뇌로 나뉘어져 있고 좌뇌는 언어중추를, 우뇌는 감각중추를 담당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뇌와 몸통은 서로 교차연결이 되어 있어서 좌뇌는 오른쪽 운동신경과, 우뇌는 왼쪽 운동신경과 연결된다. 좌뇌와 우뇌는 분리되어 있지만 뇌교(腦橋)라는 신경섬유 다발로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이 뇌교를 뇌병변이나 사고 등을 이유로 절단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때 좌뇌와 우뇌는 서로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뇌가 분리된 상태의 환자에게 좌뇌로는 닭발 영상을 보여주고, 우뇌로는 눈 덮인 경치를 보여준 후, 앞서 보았던 영상과 가장 잘 맞는 사진을 골라보도록 한다. 환자는 당연히 왼손을 사용하여 눈 치우는 삽을 골랐고, 오른손은 닭 사진을 골랐다. 문제는 다음에 이어지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당신의 왼손은 왜 삽을 골랐지요?” 실험자가 환자에게 질문을 하면 대답은 언어중추를 담당하는 좌뇌가 하게 되어 있다. 좌뇌는 눈 덮인 경치를 보지 않았고, 닭발 영상만을 보았다. 그런데도 좌뇌는 어떻게든 답을 만든다. “간단합니다. 닭발은 닭과 연관이 있고, 닭은 똥을 싸잖아요? 그 똥을 치우기 위해 삽을 고른 겁니다.” 좌뇌는 이런 식으로 그럴싸하지만 사실이 아닌 설명을 하더라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실험을 다른 형태로 여러 번 되풀이해보아도 좌뇌의 이야기 짓는 능력이 줄어들지 않더라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우뇌와의 연결이 끊긴 상태에서 발생하는 좌뇌의 이런 이야기 만들기는 뇌교가 끊어지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우측 선호성’이 있는데, 이 실험과 연관이 있다. 사람들에게 몇 가지 엇비슷한 물건을 나열해놓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라고 하면 우측 편에 있는 것을 고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좌뇌가 판단한 후 좌뇌가 고르고 오른손이 집어들기 때문이다. “이 물건을 왜 골랐어요?” 라고 물으면 이번에도 역시 좌뇌는 개연성은 있지만 결국 소설일 뿐인 설명을 하게 된다. “저는 원래 이런 질감을 좋아해요.(질감은 다 같은데?)”, “그냥 색깔이 맘에 들어서요.”

뇌 우주에 대한 탐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겠지만, 이렇게 상황에 맞게 그럴듯한 거짓말을 지어내는 것이 좌뇌의 기능이라는 얘기다. 우리는 좌뇌의 판단과 설명으로 생을 살아간다. 그것이 정확히 맞는지 안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정도 개연성만 있다면 믿고 넘어갈 수 있다. 외부에 대해서도, 스스로에 대해서도. 자기합리화를 위한 수많은 이유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도 좌뇌의 창조적인 이야기 짓기 능력 때문이다. 설명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좌뇌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든 그럴싸하게, 상대를 납득시키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것이 좌뇌의 임무이자 생존 이유인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특화되어 있는 좌뇌는 잘 만들어진 이야기에 매혹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야기를 만드는 자신의 임무를 대신해주는 외부의 이야기들에 노고없이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달콤하겠는가. 그리고 자신보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외부의 이야기에 빠져 있는 동안 좌뇌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휴식을 취한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분명히 이야기가 휴식이 되어주긴 한가 보다. 물론 좌뇌를 더 쥐어짜게 만드는 스토리도 많지만.

나보다 이야기를 잘 지어내는 사람들의 논리에 탄복하기도 하고, 엉성한 이야기에는 황당해하기도 하면서 이야기가 주는 재미에 푹 빠진 사람들, 그리고 그런 세계.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 컨텐츠에 빠져있는 세계뿐이겠는가. 자세히 보면 혼자 있어도 머릿속에서는 계속 이야기가 상영되고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온갖 생각들이 좌뇌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산물들이다. 무슨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는지 관찰자가 되어 조금만 바라보고 있어도 그 창의성에 화들짝 놀라게 된다. 정답이 없는 세계에서 그럴 듯한 팩트만 체크하면서 사는 것이 고작 인간의 생존법인 것이다. 합리적인 의심이 과연 합리적이겠는가. 매순간 매사건마다 그럴 듯한 이야기가 필요한 인간의 숙명, 인간은 이야기 없는 곳에 한 시도 머물 수가 없다. 마침내 이야기가 멈추면 그 때는 바로 좌뇌가 기능을 멈춘 때일 것이다. 좌뇌가 탐닉하고 그럴 듯하게 만들어낸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오늘도 아주 그럴싸한 거짓말의 세계에서 모두 안녕하신지….

아라차

잡지기자, 카피라이터, 에디터, 편집장 일을 했다.
글 쓰고 책 만드는 일을 간간히 하며 “공부 중” 상태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