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국이 아니다

[ 삼월 ] :: 밑도 끝도 없이 // 얼마 전 우연히 노회찬과 그의 부모에 대한 글을 읽었다. 이북에서 피난 온 노회찬의 부모는 부산 피난시절에도 단칸방에 살면서 오페라와 영화를 보러 다녔고, 나중에는 사진을 좋아하여 집에 암실까지 두었다고 한다. 도서관 사서였고 문화예술을 사랑했다던 그의 아버지는 1956년에 태어난 노회찬에게 어린 시절 첼로를 가르쳤다. 금전보다 예술을 사랑하는 태도를 아버지에게 배웠을 거라 추측하는 글도 읽었다. 그 글을 읽으며,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었다. 훗날 자라서 노동자들의 대표가 된 노회찬은 동료 노동자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을까, … Read more

짧은 치마 입고, 너나 해!

[ 삼월 ] :: 밑도 끝도 없이 // 여기 하나의 그림이 있다. 그림 안에는 두 명의 여성과 두 명의 남성이 등장한다. 한 명의 여성은 거의 옷을 입고 있지 않으며, 나머지 한 명은 그마저도 아예 입고 있지 않다. 19세기 프랑스 회화에서 여성의 누드는 흔한 소재였다. 그런데도 이 그림은 많은 조롱과 함께 살롱에서 낙선했다. 낙선전에 이 그림이 걸렸을 때는 다시 한 번 관심을 받으며, 논쟁의 불씨가 살아났다. 이 그림의 제목은 ‘풀밭 위의 점심식사’, 많은 이들이 이 그림 때문에 화가 에두아르 마네를 눈여겨보기 … Read more

리얼돌은 과연 리얼한가

[ 삼월 ] :: 밑도 끝도 없이 // 미국의 인류학자이자 성이론 실천가인 게일 루빈은 자신의 삶에서 두 번의 커밍아웃을 했다. 한 번은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 두 번째는 자신의 성적 성향을 S/M(사도/마조히즘)이라고 밝히는 커밍아웃이었다.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할 때까지 게일 루빈은 활발한 페미니즘 이론가이자 활동가였다. 당연히 첫 번째 커밍아웃은 페미니즘 공동체 안에서 따뜻하게 받아들여졌다. 문제는 S/M성향을 밝힌 두 번째 커밍아웃이었다. 게일 루빈이 학자로서 명성을 얻은 뒤에 이루어졌음에도 두 번째 커밍아웃은 전혀 환영받지 못했다. 페미니즘 이론가들은 게일 루빈을 맹렬히 비난했고, 게일이 발표자로 참여하는 학술행사를 방해했다. … Read more

기생충의 역사를 통해 보는 계급 문제

[ 삼월 ] :: 밑도 끝도 없이 // 신데렐라처럼 가난하지만 착하고 밝은 소녀가 왕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부분이 어딜까? 왕자가 가난한 소녀를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 아니면 왕자와 가난한 소녀가 현실에서 마주칠 아주 희박한 가능성? 아니다. 이미 전제부터 틀렸다. 가난하지만 착하고 밝은 소녀는 존재하기 힘들다. 가난은 사람을 종잇장처럼 힘껏 구기고, 어둠 속으로 걷게 만든다. 봉준호의 영화 《기생충》은 그런 이야기다. 가난에 대한 아주 오래된 우화들을 비웃고, 모든 동화를 의심하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 기생충은 어쩌다 기생충이 되었을까? 굶주린 기생충은 자신들이 … Read more

책이 세계를 지배하고, 독서가 여성을 배제한다

[ 삼월 ] :: 밑도 끝도 없이 // 온라인서점 알라딘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20주년 기념으로 알라딘이 내가 책을 구매한 실적을 각종 통계와 함께 알려주었다. 독서는 외로운 작업인지라, 그 작업의 일부를 함께하고 공유해준 알라딘의 상술이 기특하고 고마워 잠시 통계를 감상해본다. 알라딘이 알려준, 나도 몰랐던 내 정보를 한번 요약해 보자. 나는 알라딘에서 지금까지 298권의 책을 샀다. 예상보다 많지는 않다. 좁은 집 곳곳에 애물단지처럼 쌓인 책들을 보면 체감 상 298권보다는 훨씬 많지 싶은데, 정확한 통계 앞에서 체감은 맥을 못 춘다. 집이 좁으니 뭐 … Read more

집 밥의 가격

[ 삼월 ] :: 밑도 끝도 없이 // 집 밥, 집에서 만든 밥. 1인가구가 늘고, 모두가 바쁘게만 사는 세상에서 집에서 만든 밥을 먹을 기회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우고, 한참 재료를 손질한 뒤 요리에 돌입해서, 요리를 마치고 밥상까지 차려내는 데는 족히 몇 시간이 소요된다. 요리가 직업이나 취미가 아닌 이상 누군가 이 길고 힘든 작업을 기꺼이 하는 일이 자연스럽지는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수하게 많은 집 밥을 먹으며 살아왔다. 24시간 운영하는 식당에서는 언제든 따끈한 식사를 할 수 있고, 골목마다 간단하게 … Read more

새벽배송을 위한 변명

[ 삼월 ] :: 밑도 끝도 없이 // 새벽배송이 화제다. 저녁에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이 시작되기 전, 신선한 식재료들을 집 앞으로 배송해준다는 새벽배송. 유통혁명으로 불릴 만큼 많은 이들이 새벽배송에 열광하고 있다. 물론 열광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거세다. 편리함을 무기로 한 새벽배송에 위협당하고 있는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새벽배송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 무엇을 빼앗아갈 것인가. 새벽배송에 대한 열광과 우려에 대해, 한 번 밑도 끝도 없이 떠들어보려고 한다. 굳이 장을 보고 요리를 하지 않아도 살기에 어렵지 않은 세상이다. 오히려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일이 … Read more

여성히어로와 페미니즘

[ 삼월 ] :: 밑도 끝도 없이 // 영화는 자본의 산물이다. 누구도 이를 부정하지 못한다. 영화는 기회의 땅 미국의 헐리웃에서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했다. 미국 이상으로 영화의 발전에 기여한 나라는 소련이다. 미국이 영화를 산업으로 보았다면, 소비에트는 영화를 혁명의 도구로 보았다. 헐리웃이 영화의 흥행을 원했다면, 소련은 선전 효과를 기대했다. 자본과 국가는 서로 경쟁하듯 영화산업의 규모를 키우고, 선전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기술들을 발전시켰다. 지금도 우리는 두 종류의 아주 다른 영화가 있다고 믿는다. 흥행을 바라고 만든 재미있는 영화와, 재미는 없지만 메시지가 확실한 영화가. … Read more

영원한 고용은 없다

[ 삼월 ] :: 밑도 끝도 없이 //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에 노동부가 고용노동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름이 바뀐 게 뭐가 대수냐 싶지만, 한편으로는 오죽하면 이름이 바뀌었겠나 싶다. 콕 집어 이명박 탓이냐 물으면, 이명박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확산시키거나, 아니면 저지할 역량이 있었을 리가 없으니 고개를 저을 수밖에. 이명박은 세계적 흐름을 타고 한 국가의 한시적 수장이 되어 개인의 이익을 취하는 데에 모든 권한을 동원했을 뿐이다. 그때부터일까. 노동보다 고용이 앞서는 문제가 되어버린 게 말이다. 한 사람이 노동자가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임금과 자신의 노동을 교환하는 … Read more

땅콩이 문제다

[ 삼월 ] :: 밑도 끝도 없이 // 땅콩이 문제다. 대한항공이 땅콩 때문에 괴로워지기 시작한 건 2014년부터다. 대한항공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가 술에 취한 채 기내에서 승무원을 괴롭히다가, 강제로 비행기를 회항시킨 사건이 있었다. 당시 조현아는 대한항공의 부사장이었다. 시비의 발단은 땅콩 서비스였으며, 이 사건은 이후에 ‘땅콩회항’이라고 불렸다. 덤으로 이 사건 이후 우리나라 최대 항공사였던 대한항공은 ‘땅콩항공’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재벌가의 흉측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 이 사건은 이후 사람들이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사람들을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 한 구석 제대로 된 인물이 없었다. 차관의 …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