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을 위한 변명

[ 삼월 ]

:: 밑도 끝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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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배송이 화제다. 저녁에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이 시작되기 전, 신선한 식재료들을 집 앞으로 배송해준다는 새벽배송. 유통혁명으로 불릴 만큼 많은 이들이 새벽배송에 열광하고 있다. 물론 열광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거세다. 편리함을 무기로 한 새벽배송에 위협당하고 있는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새벽배송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 무엇을 빼앗아갈 것인가. 새벽배송에 대한 열광과 우려에 대해, 한 번 밑도 끝도 없이 떠들어보려고 한다.

굳이 장을 보고 요리를 하지 않아도 살기에 어렵지 않은 세상이다. 오히려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일이 가끔은 사치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골목마다 밤새 불을 밝히는 편의점에는 컵라면과 삼각김밥은 기본이요, 전자렌지로 간단하게 조리해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즉석식품과 간식들이 즐비하다. ‘배달대행기사’이라는 직업군을 만들어내며 음식배달도 성업 중이다. 즉석식품이나 배달음식으로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래도 여전히 장을 보고 요리를 한다. 장을 보러 갈 여건이 되지 않을 때는 인터넷 새벽배송 업체를 이용한다. 소비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대형유통업체 역시 점점 새벽배송에 뛰어들고 있다.

이렇게 편리한 새벽배송에도 우려가 되는 지점은 분명히 있다. 새벽배송이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삶을 위협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가장 큰 위협을 두 가지로 꼽을 수 있다. 먼저 포장재의 과다사용이다. 식재료 배송이 밤에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신선도 유지를 위해 냉장과 냉동 등을 위한 특별한 포장이 필요하다. 또 압력에 약한 채소나 깨지기 쉬운 달걀 등을 배송하려면 포장재가 과다하게 사용되기 쉽다. 포장재 과다사용은 환경문제를 심화시킨다는 비난을 받는다. 소비자가 직접 장을 보러 갔을 때는 줄일 수 있는 포장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위협은 배송인력의 노동조건 악화이다. 그전에 유통업체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시간대에 새로운 방식으로 배송을 하려면 야간에 근무해야 하는 인력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야간근무는 배송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삶의 질을 떨어트린다. 누군가는 새벽배송을, 남들이 쉬는 시간에도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노동자의 생활조건을 볼모삼아 이루어지는 새로운 방식의 착취라고도 말한다. 다시 말해 새벽배송은 노동자의 건강과 휴식을 갈아 넣는 형태로 진행되는 노동이라는 의미다.

위의 두 가지 이유들로 새벽배송은 비난을 받는다. 새벽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뿐 아니라 새벽배송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도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환경문제에 무지하며, 노동자들의 삶에 무신경한 어리석고 이기적인 소비자라는 말을 듣는다. 대부분 그 자신도 노동자들일 새벽배송 소비자들은 그런 비난 앞에서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노동자 대 노동자의 계급 내 대결구도 혹은 책임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소비자들이 환경문제와 노동문제 때문에 새벽배송을 거부한다면, 문제가 쉽게 해결될까.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않다. 환경문제에서 소비자들의 상품선택이 어떤 영향을 미칠 가능성 자체가 낮다. 비닐이나 스티로폼, 플라스틱처럼 환경을 오염시키는 상품의 생산 자체를 규제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지금처럼 소비자에게만 죄책감을 부과하는 방식으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노동문제도 마찬가지다. 현재 노동시장 구조 자체의 불안정성과 노동자들의 생활조건 악화에 대한 책임을 상품 소비자들에게만 전가하는 꼴이다. 그 소비자들 역시 대부분 노동자들임을 감안할 때, 노동시장을 개선할 만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끼리 경쟁과 책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새벽배송 소비자에 대한 비난은 ‘장보기’를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하지 않으려하는 이들에 대한 비난이다. 아마도 그런 비난을 하는 주체는 상대방을 ‘게으른 주부’ 혹은 ‘어리석은 소비를 하는 지혜롭지 못한 여성’으로 가정하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나라 가정 내에서 식료품을 구매하는 이가 아직도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을 이 사안에서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처럼 보이는 새벽배송 비난 논의의 구도는 그 안에 여성의 무상노동에 대한 암묵적 강요와 멸시를 교묘하게 감추고 있다.

‘장보기’는 여성이 가정 내에서 수행하는 여러 노동 중에서도 조리노동에 추가로 따라붙는 작업 정도로만 치부된다. 실제로 장보기를 여러 번 해본 사람은 이런 판단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알 수 있다. 장보기는 시간과 체력을 요구하며, 한정된 예산 안에서 필요한 상품을 선택하는 안목과 계산능력을 필요로 한다. 때로는 기동성마저 요구하는 이 작업은 가정 내에서 여성이 무상으로 수행하는 많은 노동 중에서도 가장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이다.

환경과 노동을 들먹이며 새벽배송 소비자를 비난하는 이들이 궁금해 하지 않는 것이 있다.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여성들이 식료품을 구입하는 일을 자신에게 부과된 노동으로 받아들이며 감내해 왔는지를. 새벽배송은 이 여성들의 노동을 가정 내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드러나게 만들었다. 새벽배송이 노동자의 건강과 휴식을 갈아 넣는 노동이라면, 장보기는 가정 내에서도 마찬가지로 여성의 건강과 휴식을 갈아 넣는 노동이었다.

이렇게 단순한 사실을 많이 배우고 똑똑한 분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관심 가져본 적도 없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자신의 손으로 남에게 밥 한 끼 차려줘 본 적이 없어서다. 누군가가 셀 수도 없이 숱하게 차려준 밥상들을 덥석덥석 받아먹기만 해서다. 그렇게 받아먹기만 하면서, 당연히 느껴야 했을 밥상을 차린 누군가의 노동에 대한 감사와 사죄의 마음을 잊은 탓이다. 자신의 노동이 들어가지 않은 밥상에 마음 한 구석 불편함을 느껴본 적도 없는 이들이 환경과 노동을 쉽게도 떠들어댄다. 그런 환경과 노동은 자신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올바른지’ 과시하기 위한 악세사리에 불과하다.

삼월

삼월에 태어나서 삼월.
밑도 끝도 없이, 근거도 한계도 없이 떠들어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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