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는 없지만 내 앞에만 있는 것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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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음이 끌리거든 내 금지를 어기고라도 들어가 보시오. 그렇지만 명심하시오. 내가 막강하다는 것을. 그런데 나로 말하자면 최하급 문지기에 불과하고, 방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문지기가 서 있는데 갈수록 막강해지지. 세 번째 문지기만 되어도 나조차 쳐다보기가 어렵다고.” 법(法)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청하는 시골 사람에게 문지기가 이렇게 말한다. 입장하기 위해 부탁도 해 보고, 협박도 해 보지만 문지기의 대답은 매번 “아직은 들여보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시골 사람에게 문지기는 법으로 들어가는 단 하나의 장애이다. 그렇게 시간을 흘러 시골 사람은 죽음을 면전에 두고 있다. 시골 사람은 문지기에게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질문을 한다. “이 여러 해를 두고 나 말고는 아무도 들여보내 달라는 사람이 없으니 어쩐 일이지요?” 문지기는 이 사람이 곧 임종하리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말한다. “여기서는 다른 그 누구도 입장 허가를 받을 수 없었어. 이 입구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나는 이제 문을 닫고 가겠소.”

카프카가 쓴 [법 앞에서]라는 짧은 이야기다. 처음 이 소설의 내용을 들었을 때 가격당한 뒤통수의 얼얼함이 아직도 남아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나를 때리지 않았지만 분명 나를 가격한 그 충격. 그토록 들어가고자 열망했던 문. 여기서는 법이라고 표현되었지만 누구에게나 통과하고자 열망하는 어떤 문이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언제든 들어갈 수 있다고 여겨지는 문. 나는 그 문을 통과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게 어떤 노력이냐 하면 우선은 그 앞을 지키고 있는 문지기를 포섭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지기가 미묘하다. 나를 도와주는 것인지, 방해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문지기라는 장애물만 없다면 나는 그토록 열망하던 곳으로 갈 수 있는데….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나는 시력도 나빠지고 청각도 하수상하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오로지 저 문지기와 나 뿐이었다. 아무도 이 문 앞에서 오지 않았음이 마지막 깨달음처럼 떠올랐다. 이 문 앞에서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금기를 어기고서라도 저 문 너머로 가 볼 것을. 후회해도 이제는 늦었다. 문지기의 마지막 말은 더 뼈아프다. 이 문이 나만을 위한 문이었다고, 내가 들어가지 않았으니 이 문은 이제 닫힐 거라고. 문 앞에서 허송세월 한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면서 나의 생명도 저문다. 이렇게 생을 탕진하고 가는 구나.

법은 무엇이고, 문은 무엇이며, 문지기는 또 무엇이냐. 나름의 의미들이 떠오를 것이다. 나에게도 반짝거리는 법이 있고, 그 길로 가기 위한 문이 있고, 또 어김없이 장애라고 여겨지는 어떤 것들이 있다. 이 문턱을 넘기 위한 딱 하나의 장애물. 그러나 과연 장애일까. 그 문지기는 또 다른 나이지 않을까. 이러쿵 저러쿵 말도 많은 또 다른 나는 언제든 넘지 못할 이유들을 끌어 오고, 가 보지도 않은 두 번째 문지기의 위대함에 대해 떠들어댄다. 이걸 넘어봤자 더 큰 상대가 기다리고 있다고, 그러니 해 봤자 뭐하겠느냐며 편드는 건지, 다독이는 건지 알 수 없는 이유들을 가져온다. 결국은 나를 죽이면서까지 저 문을 넘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나. 나는 과연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싸워보지 않으면 모른다. 넘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실제로 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하지 않고 있을 때는 모든 것이 금기이고 모든 것이 장애물이다. 시대도 잘못 만났고, 부모도 잘못 만났으며, 재능조차 조촐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 문이 나에게만 입장 허가 여부가 달려 있단다. 오로지 나만 갈 수 있는 길, 나만 싸울 수 있는 무대, 내가 써야 채워지는 인생. 누가 대신 싸워주지 않고,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문지기랑 입씨름하느라 이론으로 치자면 장인의 수준이다. 그거라도 전리품으로 갖고 싶다면야 말리지는 않겠다.

내가 현재 어떤 싸움을 하고 있는지 숨넘어가고 있는 시골 사람의 시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법이 거기 있고, 문이 거기 있고, 문지기가 거기 있는 게 진짜 맞는가. 나에게만 보이는 것이라면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내가 만든 거대한 허위. 시대도 허위고 부모도 허위고 재능도 허위다. 첫 번째 문지기를 무시하고 그 문을 통과하면 아무것도 없을 수 있을 가능성. 내가 법 앞에서 돌아서는 순간, 웅장하던 그 문이 오아시스처럼 사라져버릴 가능성, 충분히 있다고 본다. 이 싸움은 내가 만들지도 않은 나의 금기 앞에서 스스로 무릎을 꿇어버린 형국이다. 허깨비랑 싸우지 말자. 왜 여기서 시간 탕진하며 무릎깨지게 비굴함만 키워가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다른 법도 있고, 다른 문도 있을 것이다. 아니, 법도 문도 문지기도 모두 모래바람일 가능성? 있다고 본다.

오늘 [법 앞에서]를 다시 읽는다. 당신은 어떤 가상의 벽 앞에 서 있는가.

잡지기자, 카피라이터, 에디터, 편집장 일을 했다.
글 쓰고 책 만드는 일을 간간히 하며 “공부 중” 상태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