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효사회無孝私會
[ 기픈옹달 ]
:: 경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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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이다. 연구실을 가는 길에 건물주 할머니를 만났다. 나를 내쫓은 그 건물주를. 매일 그 앞을 지나가니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 그렇지만 애써 모른 척 지나고 싶었다. 웬걸, 쪼르르 오더니 내 손을 두 손으로 잡는 게 아닌가?
“내가 미안혀.”
“아니요, 뭘…”
그 상황에서 빨리 빠져나오고 싶었던 까닭일까? 어느새 난 예의 바른 청년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 착해빠진 정신이라니. 파렴치한은 아니라며 정신승리하는 수밖에는 없는 걸까? 그렇게 속으로 욕하던 시간은 무엇이 되어버렸는지.
아마도 그는 진정 어린 사과를 하고 싶었을 테다. 그리고 짧은 사과로 마음의 짐을 덜어냈겠지. 그러나 나에게는 찝찝함이 남고 말았다. 사과의 말을 들은들 달라질 것이 무어 있겠는가.
문득 루쉰의 소설 <아Q정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Q는 혁명당원의 누명을 쓰고 관아에 잡혀간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였으나 혁명당원인 체했다. 그것도 아주 우쭐하게. 죄목을 묻는 사람에게 이렇게 답할 정도였다. ‘모반을 좀 했지.’ 그런 그도 관원 앞에 서자 스스로 무릎을 꿇고 만다. 그때 그를 심문하려던 관원이 내뱉은 말 “노예근성…”
아Q의 ‘노예근성’이란 무엇일까? 어쩌면 노인 앞에 저절로 허리를 굽히는 공손한 나의 태도 역시 노예근성이라 부를만한 게 아니었을까?
즉흥적으로 한 모임에 참석했다. 동문을 여럿 만날 수 있는 자리였는데, 죄 나보다 학번이 높았다. 덕분에 오랜만에 ‘야’니 ‘너’니 하는 호칭을 들을 수 있었다. 낯선 얼굴이라 대놓고 반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불쑥 반말투의 어미가 튀어나오곤 했다.
신기했다. 저런 조심성 없는 언어의 불쾌함 보다도 그 말들을 듣고 우물쭈물하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나도 몰래 두 손을 모아 공손해지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이날 강의 주제는 ‘갑질과 꼰대질의 경제학’이었다. 내가 보기에 갑질과 꼰대질은 명확히 다르다. 갑질이 사회적이며 정치적이라면 꼰대질은 규범적이며 일상적이다. 하여 갑의 위치에서 을, 병, 정의 위치로 굴러 떨어져내리는 것은 쉬우나 꼰대질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꼰대질은 깊숙이 배어있는 습속, 버릇보다 더 깊이 담긴 속알이에서 튀어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근성根性’이랄까?
옛 사상가는 이를 ‘본성本性’이라 했을 테다. 맹자는 사람이 배우지 않아도 부모와 어른을 공경할 줄 안다 말했다. 맹자가 칭송한 순임금을 보자. 그는 효孝의 화신이라 할 수 있는데, 그의 부모가 그를 죽이려 했음에도 원망하는 마음을 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맹자가 순임금을 칭송한 이래로 효는 인간의 본성이자, 하나의 처절한 의무가 되었다.
처절한 의무. 순임금은 자신을 모살謀殺하려는 부모를 사랑해야 했다. 순임금뿐인가? 자식은 부모를 위해 눈밭을 해치고 과실을 따왔으며,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왔다. 왜 하필 한겨울에 효자가 나오는지 물을 수 없었다. 아내는 남편이 때려도 맞아야 했으며, 따라 죽어서라도 애정을 표현해야 했다.
이런 내력 속에 태어났으니 어찌 후배가 선배에게 말이 좀 짧다며 투덜거릴 수 있을까. 어디서 야, 너라는 말을 쓰느니 하는 식의 지적질을 할 수 있을까.
낡고 질긴 뿌리. 그래서 강의를 하다 기회가 생기면 효자가 되지 말자고 말한다. 노인을 보면 저절로 자리에서 일어나고, 선생 앞에서 먼저 고개를 숙이는, 몇 살이니 하는 질문에 공손히 답하는 그런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효자가 되지 말라는 말을 한창 늘어놓으면, 그럼 호래자식이 되라는 거냐며 발끈하는 이가 있기도 하다. 망나니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겠지. 허나 효가 이 땅에서 사라진다 한들, 뭐 그리 대단한 변화가 있을까. 그런 질문을 받으면 효자가 되기보다는, 부모와 우정을 쌓으라 말하곤 한다. 상호간의 우애를 이루는 관계를.
그러나 이 역시 요원한 말임을 잘 알고 있다. 친구 먹자는 동생에게 날아오는 말은 싸가지 읎는 ㅆㄲ라는 모멸찬 말이겠지. 부모, 선생, 노인까지 갈 것도 없다. 고작 한 두 살 차이에 줄 세우는데 무얼 탓하랴. 하여 루쉰이 고안한 방법이란 낡은 세대가 죽어 사라지는 걸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루쉰은 100살이나 사는 시대가 열리리라는 건 상상도 못했을 테다. 하여 또 다른 방법이 고안되었으니 침묵하기이다. 부당함을 말해보아 아무런 득이 될 것이 없으니 그냥 입 닫고 있는 것이다. 가능한 귓등으로 듣기.
그래서 부모는 자식의 속내가 못내 궁금하고, 선생은 질문 않는 학생이 못내 답답하다. 그러나 닫힌 입을 열려고 할수록 이빨을 더 꽉 물뿐이다. 답을 아는 까닭이다. 거리낌 없이 말해 보라는 기만술에 결코 속아서는 안 된다.
결국 익명이 소중하다. 우후죽순 생겨난 대나무숲들이란 이런 현실이 만들어낸 흥미로운 창조물 아닐까. 내가 누군지 상관없이 떠들 수 있는 곳, 그곳이야 말로 진정한 대화의 현장이 아닐지.
최근 한 강의에서는 오픈채팅방을 열어 질문을 받았다. 익명으로 질문을 남길 수 있어서 그런지 제법 활발하고 자유분방한 질문이 이어진다. 자유롭게 질문하라는 말로 해결할 수 없었던 대화의 물꼬가 그렇게 트였다. 무엇을 쟁취하여 얻는 자유가 있는가 하면, 무엇을 소거함을 통해 생겨나는 자유도 있는 법이다.
모임 끝에 동문들끼리 모여 사진을 찍었다. 어색하지만 나도 찰칵. 우왕좌왕하는 틈에 연락처를 교환하고 어느새 카톡방에 초대되었다. 카톡카톡 울리는데 나는 여전히 침묵 중이다. 맞장구치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딴죽을 걸어볼 마음도 없다.
호응도 비판도 없는 침묵. 무효사회無孝私會란 그렇게 한없이 멀기만 하다.
독립연구자.
黥치는 소리 혹은 經치는 소리,
아니면 磬치는 소리 뎅뎅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