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②_네 앞에 서면 자꾸 화가 나

[ 지니 ]

:: 인문학, 아줌마가 제일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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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일단 화낼 준비가 된다. 준비가 된 사람에게라면 뭐라도 하나 걸려들지 않기는 쉽지 않은 법. 대개는 설명하지 않는 의사들을 향해 뾰족하게 촉수를 곤두세우지만 어떤 경우는 진료실에 들어가기도 전 간호사나 다른 직원들에게 딴지를 건다. 주로 치과에서다.

몇 번 대면했던 치과의사들은 내게 의사라기보다는 힘 좋은 기술자다. 어금니를 갈라서 캐내고 대체물을 잘 박아 넣는. 문제는 이 공사에 들어가는 비용을 산정하는 일명 실장님들이다. 병원 유니폼이 아닌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고상하게 화장을 하고 꽤나 전문가스럽게 치료과정을 설명한 후, 이 정도면 싸게 하는 거라는 듯 엄청난 금액을 부르는 이 분들. 치료비를 깎으려고 실랑이를 하는 게 아니다. 여러 옵션이 있는 것을 내가 이미 알고 있는데 가장 비싼 것에 대해서만 말하고 다른 옵션의 위험성을 부풀리는, 그러면서 어물쩍 갑자기 논리가 딸리는 그 태도에 화가 나는 것이다.

삼십 년 넘게 종합병원 간호사로 일해 온 언니는, 이런 나를 보며 바보 같다고 열을 낸다. ‘의사들도 잘 모른다. 그러나 너의 그런 태도라면 아는 것도 얘기해주고 싶지 않을 거다. 잘 구슬려서 네가 원하는 걸 얻으면 되지, 어떻게 매번 눈에 불을 켜고 그러냐’며. 아니 아픈 몸으로 끌려 다니면서 하라는 검사까지 다했는데, 어디가 어떻게 왜 아픈 건지 그 설명을 듣기 위해 의사를 구슬려주기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래, 내 화를 검토해보자.

화를 낼 때는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올 만큼 내 몸이 덜 아플 때다. 말도 못하게 아플 때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되니 의료진의 태도가 어쩌니저쩌니 할 여유가 없다. 하라는 검사도 군말 없이 하고, 따지지 않고 먹으라는 약도 시간 맞춰 먹겠지.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살려달라고 할 판인데 구슬리는 일쯤이야. 의사선생님의 손을 잡고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고, 눈물까지 흘리는 사람이 있지 않나. 아마도 그 몸의 고통이 덜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신체의 고통만큼 기존의 판단을 무화시키는 일도 없다. 꼿꼿하게 서서 아는 척, 잘난 척했던 자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내 몸의 고통을 사라지게 하는 데에 온 신경을 쓴다. 병과 함께 살자던 슬로건은 고통 앞에서 바로 깃발을 내린다.

그렇다면 나의 화는 아직 고통이 되지 않은 병 때문이거나, 고 정도로만 아픈 몸, 그 만큼 건강할 때만 솟구치는 것? 고통 받고 있는 신체에서는 맥도 못 추면서, 건강한 몸일 때만 나오는 것이 내 화라면, 내 화의 정당성은 사라진다. 그렇다면 화를 안 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감정은 모름지기 이쪽의 기대가 어긋났을 때 생기는 법이다. 화만 그런 게 아니다. 기쁨도 마찬가지, 그러리라 예상치 않았던 것에서 온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딸의 성적이 좋을 때, 기대하지 않았는데 남편이 본인은 안 먹는 술을 사들고 들어올 때. 의사에게 나는 화는 내가 그에게 기대하는 바를 그가 주지 않아서다.

의사에게 내가 기대하는 것은, 이렇게 아픈 이유를 그는 알 것이며 따라서 나에게 알아듣게 설명해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기대는 번번이 빗나갔다. 내 아픔에 대한 사려 깊은 설명 같은 것을 대개는 들을 수 없었으며, 앞으로도 대개는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화를 낸다? 어리석다.

경험만으로 뭔가를 그냥 배울 수 있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동일한 상황인데도 반복적으로 화가 난다는 것은, 경험이 나에게 얼마나 무용했는지를 증명한다. 매번 처음 경험인 듯 화가 난다? 설명하지 않는 의사의 실재임에도, 의사는 설명해줘야 한다는 관념에만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리석다.

의사는 설명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지 않는 게 의사라고!

의사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병원에 갔다면, 알고 싶다면, 듣는 자세로 임해도 좋으리라. 설명하지 않을 것이기에 필요한 것을 얻으려면 이쪽의 태도를 바꿔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그러다 기대가 어긋나는 일이 생기면 기대하지 않은 기쁨을 얻을 지도 모른다. 물어보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아주 친절하게 설명하는 의사선생님을 만난다면 말이다.

감정은 언제나 내 앞의 대상으로부터 촉발되는 내 안의 관념다발들로 인해서 생긴다. 의사에 대한 나의 관념과 실재하는 의사가 부딪치고 있는 것인데. 많이 경험했으니 의사에 대한 내 관념은 수정되어야 했었다. ‘설명하지 않는 게 의사다’로. 의사는 본래 그런 것이니 설명하지 않는 내 앞의 이 구체적인 의사와 충돌할 이유가 없다. 자, 이제 나의 화는 사라진다~! 사라져라~~!     

지니

생각을 넘어가지도 않고
생각에 못 미치지도 않는
말을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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