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릴없이

[ 기픈옹달 ]

:: 경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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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늘 얼마간의 진실을 담고 있기 마련이다. 세간 사람들의 말을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뻔하디 뻔한 말에도 진실의 한토막이 담겨 있다.

그래도 교회는 나가야지. 숱하게 들은 말이다. 못마땅한 게 있더라도, 행여 마음에 혹은 영혼에 상처를 입었더라도 교회는 나가야지. 그러다 영 신앙을 잃어버린다. 고향집에 내려가면 듣는 말이다. 

넌 교회에 가기는 하냐? 아버지의 질문은 간결하다. 깊은 이야기로 이어질 수 없는 질문. 사실 별로 대답이 궁금한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대답도 그때마다 다르다. 얼렁뚱땅 넘어가기도 하고, 말을 흐리기도 하고, 못 들은 척하기도 하고. 

허나 어머니는 늘 그게 걱정인가 보다. 고향집에 붙어 있는지 한 이틀쯤 되는 날 불쑥 질문을 던진다. 함께 소환되는 것은 어린 시절 이야기. 그렇게 새벽기도도 가고, 열심히 신앙생활 했잖어? 엄마는 늘 기도하고 있단다. 그래서일까? 몇 번 불쑥 속내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마 교회 세습 문제도 입에 올렸던 듯하다. 그래도 교회는 가야지. 그런 일은 하나님께 맡기구. 

몇 해 지나면서 공방의 양상도 바뀌었다. 꼴 보기 싫어 교회 안 갑니다. 지난날의 대답이 이랬다면, 요샌 이렇게 대꾸한다. 신앙은 각자에게 달린 거지요. 

얼마 전 일이다. 주일, 교회 간다는 아이를 교회 앞까지 데려다 주곤 연구실로 나왔다. 헌데 연구실 앞에 누가 커다란 팻말을 들고 서 있는 게 아닌가. 지나가며 슬쩍 보니 교회세습 어쩌구저쩌구 하는 글이 보였다. 연구실 맞은편에는 큰 교회가 하나 있는데, 아마 그 교회 교인들 보라고 나온 사람 같았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이었다. 한쪽에 팻말을 세워두고 연구실 입구에서 비를 긋고 있는 모습이 좀 처량해 보였다. 오가는 교인들이 해코지하지는 않을까. 저이는 무슨 생각으로 오늘 비를 맞으며 저기에 서 있을까. 

커피를 끓여서 내려갔다. 응원의 말이라도 한마디 보태고 싶었는지 모른다. 쓸데없는 짓은 아닐까 했는데 그래도 감사히 받아주니 고마운 일이다. 커피를 홀짝이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명성교회 세습문제로 총회 재판이 열린단다. 재판국 14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연구실 맞은편, 해방교회 장로라고. 6명은 확실히 세습에 반대인데 8명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단다. 해방교회 장로가 그 가운데 하나. 부담을 지우려 나왔단다. 

비도 오는데 고생하십니다. ‘교회개혁 평신도 행동연대’에서 나왔다는 그는 자기는 일도 아니란다. 동료 가운데 하나는 포항까지 내려갔다나.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가 안동 출신이라 영남지방에 텃세가 심하단다. 그러니 싫은 소리를 들어도 그쪽이 더 듣겠지.

커피 한잔을 후루룩 마시는 시간과 함께 짧은 대화가 끝났다. 컵을 들고 돌아와 컵을 씻으며 꽤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하여 쓸데없이 오지랖을 피우고 말았다. 연구실에서 사람들과 함께 엮은 자료집을 들고 내려갔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연구 공동체인데, 작게나마 응원하겠다. 옆에서 지켜보며 관심을 갖겠다 운운. 

며칠이 지나 총회 재판국에서 명성교회의 부자세습이 잘못되었다 판결했다는 소식을 보았다. 인터넷에 흐르는 글 가운데 잠깐 눈에 스쳤으리라. 그러나 반가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려니 했을 뿐이다. 아마 재판국의 판결이 반대로 나왔더라도 그러지 않았을까.

명성교회의 세습 문제가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이 들면서도, 무슨 말을 하나 보태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꽤 오래전부터 착착 준비되었다는 사실도, 아들 김하나 목사에게 교회를 하나 세워준 다음 그 교회와 합병하는 식으로 아들을 초빙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더불어 세습의 꼼수도 여럿 있다는 사실도. 중간에 허수아비 목사를 세워 징검다리 식으로 세습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이웃 목사와 서로 맞바꾸어 세습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대의 아들을 나의 교회에, 나의 아들을 그대의 교회에 식으로.

예전 같으면 혀를 끌끌차며 마음에 불이 붙었겠지만 별 생각이 들지 않더라. 마치 물에 젖은 재마냥 가망없는 눈으로 멀끄러미 볼뿐이었다. 교회세습이 있다 한들 교회가 지은 숱한 악행에 하나를 보태는 게 아닐까? 세습을 막는다 한들 교회가 조금 바뀌기는 할까? 나아가 이 사회의 정의에 티끌만큼의 도움이 되기나 할까? 목사의 사유화를 문제삼는다지만 이미 교회는 기업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사태가 어떻게 된들 우리 목사님만 바라는 저들을 들끓는 신앙은 영원하지 않을까.

별로 중요하지 않을 질문들만 툭툭 솟아났다. 답이 궁금하지도, 진지하게 물고 늘어지며 누구와 이야기할 생각도 없이. 그래, 마음이 멀어진 것이겠지. 마음도 멀어지고 신앙도 멀어지고, 이제는 영영 남의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게 아닐까.

신앙은 각자에게 달린 거지요. 저들의 신앙이 미신이건, 광신이건 별 말을 보태고 싶지 않은 거겠지. 나 역시 아무 말로 듣고 싶지 않고. 또 저들의 말에도 나름의 진실은 있을 테니.

신앙이 있어야 나중에 버티고 살지. 어느날 누군가 신앙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삼환 목사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싶은 저들의 신앙도 유의미한 삶의 방편이다. 그러니 아들이라도 세워서 기대고 싶은 거겠지. 어쩌면 다행이다 싶다. 그게 안 되면 사진이라도 쓰다듬으며 우리 목사님 우리 목사님 하는 이도 있겠지. 신앙이란 일면 그렇게 맹목적인 것을. 하여 신앙을 잃었다는 것도, 불신자가 되었다는 것도 맞다. 잡생각이 많아 할 말을 찾기 힘들다. 

하루 종일 무더운 날이었다. 늦더위는 기승을 부리는데 비까지 와서 눅눅하니 끈적이는 바람이다. 우두커니 몇 시간째 뜨거운 바람을 맞으며 앉아있다 몇 자를 적었다. 그래도 글을 써야지 하는 생각에. 

2019.08.12

기픈옹달

독립연구자.
黥치는 소리 혹은 經치는 소리, 
아니면 磬치는 소리 뎅뎅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