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많은 소녀»가 ‘우울’을 형성하는 방법

[ 준민 ]

:: 줌인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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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은 영화 < 많은 소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우울하다. 아니, 그보다철학자가 언어를 점유해 말을 하는 아니라 언어가 철학자를 점유해 그에게 말을 하게 한다. 문장처럼, 영화는우울이라는 언어에 점유되어 만들어졌다. 영화의 어떤 점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을까.

 

우울이 만든 장면들

우울 화면에 담는 일은 쉽지 않다. 어찌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해낸 장면이 있다. 영화의 6~11번째 . 화장품 가게를 배경으로 한다. 경민(전소니) 쇼윈도 밖에서 매장 안을 들여다 본다. 영희(전여빈) 립스틱을 바르고, 한솔(고원희) 아이라이너를 그리고 있다. 경민이 매장 안으로 들어오고, 카메라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경민을 따라 이동한다. 이동이 끝난 카메라에는 영희를 쳐다보는 한솔의 눈과 경민을 바라보는, 거울에 반사된 영희의 눈이 보인다. 이어지는 경민의 바스트 . 경민은 영희를 바라본다. 뒤이어 영희와 한솔의 바스트 . 영희의 눈은 경민에게 고정되어 있고, 한솔도 뒤돌아 경민을 바라본다. 다음 컷에서 카메라는 영희의 뒤로 이동해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영희를 트래킹 숏으로 따라간다. 영희는 점원(김진)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한다. 말을 듣고 점원은 경민에게 다가간다. 카메라는 점원을 따라 왼쪽 트래킹 . “학생, 잠깐 가방 있을까?” 침묵을 깨고 나온 대사와 함께 멈춘 카메라엔 다시 한솔과 영희가 잡힌다. 시퀀스의 대사는 경민이나 한솔, 영희가 아닌 점원의 입에서 나온다. 영화는 경민이 영희와 한솔에게 소외당하고 있음을 대사가 아니라 교차하는 배우들의 눈빛으로만 표현한다. 시퀀스에서 42초간의 침묵은 이들 사이에서 경민이 얼마나 배제되고 있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침묵을 깨는 점원의 대사는 담백하게 소외를 확인시켜준다.

하나의 침묵. 아마 영화에서 가장 주목 받았을 장면. 락스를 마시고 목소리를 잃은 영희가 수술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온 , 교단에 서서 친구들에게 수화를 한다. 장면은 영화의 50 지점에서 , 1시간 32 지점에서 , 번에 걸쳐 나온다. 완전 같은 장면이 반복되는 아니다. 번째 장면은 수화에 번역이 없고, 시점 이동없이 측면에서 영희를 찍은 하나의 컷이다. 번째 장면에선 수화가 번역되고, 컷이 일곱 개로 늘어난다. 컷이 하나에서 일곱 개로 늘어난 이유는 장면 사이에 쌓인 감정들 때문이다. 추가된 여섯 컷은 영희와 문제가 있었던 유리(이태경), 다솜(이봄), 한솔의 바스트 숏이고, 컷은 교실 전체를 보여주는 숏이다. 마지막 컷은 영희를 다른 시점에서 찍었다. 교단에 있는 영희를 교실 뒤에서 정면으로 찍고, 서서히 줌인하는 . 관객은 영화가 시작되고 50초만에 영문도 모른 장면을 보고, 1시간 31분이 지난 후에 영희와 감정을 나눴던 인물들을 포함한 채로 같은 장면을 다시 보게 된다. 시퀀스도 바로 위의 문단에서 설명한 시퀀스와 같은 특징이 있다. 침묵 후에 침묵을 깨뜨리는 소리가 고립된 명의 소외감을 드러낸다는 . 영희의 수화가 시작되고 나서 1 14 간의 침묵은 친구들의 박수소리로 깨진다. 수화의 내용이나는 여러분이 그토록 원하던 나의 죽음을 완성하러 왔습니다. 여러분 앞에서 가장 멋지게 죽고 싶습니다.임에도 불구하고.

 

분노와 무기력

영화는 활력이 넘친다. 서로가 각자의 분노를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희가 락스를 마시는 장면, 경민의 엄마(서영화) 영희와 한솔과 식사를 하면서 자신의 가슴을 칼로 찌르는 장면, 경민의 자살에 대한 비밀을 찾으려 경찰 노릇을 하는 유리가 용의자들을 추궁할 , 등등의 장면에서 배우들은 분노를 표출한다.

이와는 다른 결의 분노도 있다. 담임 선생님(서현우) 경민의 장례식장에서 영희의 머리를 때리는 장면, 김형사(유재명) 영희를 취조하면서 화를 내는 장면, 교무주임(최교식) 수업 도중 자살 사건은 보통 6개월이면 잊는다며 학생들을 꾸짖는 장면, 등등의 장면에서도 배우들은 분노를 표출한다. 묘사된 부류의 분노는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르다.

전자의 분노는 동적이다. 분노에는 목적이 있다. 이들은 경민의 자살을 슬퍼하며, 분노에 못이겨 행동한다. 영희는 경민의 학원에 찾아가고, 유리는 한솔을 시켜 영희의 집을 찾는다. 경민의 엄마는 수사에 필요한 대형 텐트를 사러 캠핑 용품 매장에 간다. 배우들은 계속 여기저기를 쏘다닌다. 그러나 분노의 목적은 완성될 없다. 경민은 다시 살아 돌아올 없고, 그가 자살한 이유도 찾을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분노해도 공허하고, 시간이 갈수록 무기력해진다. 배우들의 무기력은 영화를 우울하게 만든다.

후자의 분노는 정적이다. 그들은 경민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 그들의 분노는 달성될 있는 목표를 갖고 있다. 사건을 종료하는 것이다. 그저 일상의 반경 안에서 사건의 끝을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들은 전자의 배우들보다 겉으론 활동적이지 않지만, 속으론 빠르게 사건을 종료하고 일상을 반복하려는 동력을 가진다. 김형사는 드디어 사건을 마무리 지었고, 담임은 그의 속물적인 학교 생활로 돌아간다.

 

퀴어의 우울?

< 많은 소녀> 영희와 한솔, 경민은 서로 절친한 사이가 아니다. 이들의 삼각관계는 우정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뤄진다. 영희 사람을 한솔과 경민이 동시에 사랑한다. 이들은 동성도 사랑할 있는 능력을 가졌다.

묘사에 따르면, 영희는친구들에게 좋은 생각을 전염시키는 아이. 경민은가요가 아닌 90년대 북유럽 밴드들의 음악 듣고, 어딘가 우울해 보이고, 주변 어떤 친구와도 어울리지 못했다. 영희와 한솔은 학교 밖에선 데이트를 즐기지만 학교에선 멀찌감치 앉아 마디도 하지 않는다. 영희는 생리대를 빌릴 때만 한솔을 찾는다. 영화는 평범하지 않은 그들의 기질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렇다면 이들의 우울은 어디서 오는 걸까? 영희와 경민은 그들의 평범하지 않은 기질로 인해 학교에서 아웃사이더가 됐기 때문에 우울한 것일까?

여기서 비평가의 글을 빌리겠다. 그는 우울함이사회화되기 결과물이 아니라 자신의 성적 욕망과 쾌락을 다루면서 모든 이들이 겪게 되는 무의식적인 힘과의 투쟁의 결과라고 말한다. 그는 우울이라는 낱말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하며 안에 여성이나 남성 게이로서의 삶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헤아리려는 주장들을 높이 사지 않는다. < 많은 소녀> 영희가 그렇다. 영희의 우울함은 사회로부터의 소외 때문에 생긴 아니다. 오히려 우울함은 치열한개인화되기 산물이다. 영희의 우울은 경민의 자살에 비롯한 것이 아니다. ‘영희의 얼굴 스크린에 등장함과 동시에 우울을 뿜어낸다. 이것이 내가 < 많은 소녀> 서사보다영희의 얼굴 압도된 이유이자 영희의 좋은 생각에 전염된 이유이다.

(서동진, 이제 당신의 우울은 내게로 옮겨집니다. – 항에게, 전시 도록> 인용)

 

자살의 이유

인간은 언제부턴가 그냥 죽을 없게 되었다. 영화는 경민의 자살과 관련된공무 비추려고 노력한다. 학교나 경찰은 경민의 자살을 처리해야 하는 업무처럼 다룬다. 학교의 입장에서 경민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사고사여야 하고, 경찰은 위에서 내려오는 공문 때문에 사건을 급하게 마무리해야 한다. 자살과 공무가 만나는 해롭다. 김형사는 자살의 이유를 찾기 위해 영희를 압박하고, 그럴 듯한 대답이 나오자마자 목적을 달성한 수고했어. 가봐.”라고 말한다. 학교는 자살의 이유를 경민의 개인적인 기질에서 찾으려 애쓴다. 이러한 과정들은 남겨진 사람들을 우울의 늪에 빠지게 만든다.

경민이 자살한 이유는 뭘까?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 아니면 정말 영희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려던 의도에서 였을까? 이유는 유서를 아무리 읽어도 찾아지지 않는다. 죽고 싶은 정확한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영화가 우울한 이유는자살 다뤘기 때문이 아니다. 영화 캐릭터들이 그랬던 것처럼, 절대 없는 이유를 향해 달려가기 때문이다. 영화는 결말을 통해 자살의 이유는 절대 없다는 보여준다. 영희가 죽고 나서도, 남겨진 사람들은 어김없이 영희의 자살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준민

영화를 만들고, 얘기하면서 먹고 살고 싶지만,
꿈은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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