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이 이 글을 좋아할까?

[ 미미 ]

:: 루쉰 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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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의미. 티비앤 광고가 아니다. 이것은 내 삶의 모토였다.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사는 삶. 살만했다. 그렇게 재미와 의미를 끝없이 교환하면서 살아도 좋았을 어느 날, 삶에 질문이 생겼다. 왜 이렇게 허무한가. 내가 집중했던 자녀교육, 종교, 사람들과의 모임과 취미생활 이 중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 끝은 언제나 허무했다. 나는 그 이유를 몰라 당황했다.

삶에 질문이 생긴 일은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그건 어떤 의미에서 좋은 일이었다. 더 이상 허무해지지 않을 어떤 것. 삶에서 추구해야 할 것은 재미가 아니라 기쁨, 의미가 아니라 희망이라는 깨달음은 나를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꿈으로 부풀게 만들었다. 새로 품게 된 희망은 그전에 추구했던 의미와는 좀 다른 것이라 생각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이전의 재미와는 다른 차원의 기쁨으로 생생하게 다가왔다. 재미와 의미가 희망과 기쁨이 되는 이 환희. 그러나 문제는 희망은 무너지고 기쁨이 슬퍼지는 순간이 도래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또 다시 허무해졌다. 이번에는 완벽하게 허무였다. 기필코 허무해지지 않았어야 할.

희망은 희망이 아니게 되는 순간 절망이 된다. 기쁨도 기쁨이 아니게 되는 순간 슬픔이 된다. 내가 희망에 기대어 있는 한, 희망은 언제나 절망이 될 준비를 하고 기쁨 역시 마찬가지다. 희망은 존재를 배제한다. 스피노자의 말이다. 희망이 의미 찾기로서의 미래의 꿈인 한, 내가 희망하는 대상은 나에게 존재를 배제 당할 것이다. 그 대상이 공부든 사람이든 사물을 존재로 만나지 못하고 그저 의미 찾기에 급급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결국 슬퍼지고 그 결과에 두려워질 것이다. 희망이 죄가 아니었다. 내 죄였다.  

큰일이다. 재미와 의미도 사라진 마당에 희망과 기쁨도 물 건너가다니. 세상 막막하다. 공부시작 이전의 생활로도 그 이후로도 돌아갈 수 없다. 순식간에 무언가로부터 내동댕이쳐진 듯, 뭐가 뭔지 어벙벙한 가운데 눈에 들어온 한 사람, 루쉰이다. 

왜 루쉰인가. 루쉰에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 절망과 허무, 고독이다. 그런데 그것이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임을 이제야 눈치 챘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낭만도 냉소도 없이, 피도 눈물도 없이 글을 쓰고 삶을 산다는 것은? 딱,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알겠다. 지금부터 내가 사는 삶은 지긋지긋한 의미, 재미, 희망, 기쁨 같은 긍정적 감정과 욕망이 아닌 것들로 이루어질 테다. 지금부터 내가 쓰는 글은 “현재에 집착하고 지상에 집착하는” 사람의 글일 테다. 집착 쩌는 글. 막 쓰기로 한다. 세상에 나쁜 글은 없다. 루쉰에 관한 거라면 뭐라도 쓴다. 그런데 과연 루쉰이 이 글을 좋아할까? 피도 눈물도 없이 말하련다. 루쉰 선생. 다만 ‘잡감’일 뿐이라구요.

2018. 11. 27.

미미

야매 루쉰 연구자이자 야매 철학자. 아무튼 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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