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루쉰을 좋아하는 이유

작년 가을 루쉰 전집 읽기를 시작하면서 나는 기묘한 기시감, 혹은 데자뷰를 경험했다.

하! 백 년 전에 현재에도 유효한 고민을 한 작가가 있었네 라는. 이전에 내가 알던 『아Q정전』의 저자는 단지 화석이었다면 지금은 뚜벅 뚜벅 내게로 걸어와 말을 거는 것 같다. 세상은 아직도 많이 변해야 한다고.

루쉰을 21세기에 다시 불러 그의 작품을 곱씹게 만드는 것은 당시의 그의 고민과 투쟁이 현재에도 여전히 통하는 접점이 있기 때문일 터이다.

처음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공부했을 때였다. 만화경처럼 펼쳐지는 열전의 인물들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때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2 천 년 전에 모두 있었던 일이네” 이 세상에는 새로운 것도 새로울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동아시아 변방의 한 개인에게도 그 영향력이 이럴진대 더구나 중화라고 하는 세계에서 중국인들이 자신의 문화에 갖는 자부심은 상당할 것이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저런 문화적 자부심은 “옛날에 그런 일이 이미 있었지”(古已有之)라고 되뇌며 새로움을 거부하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역기능도 있다.

  “역사서에서 (오대, 남송, 명말 등등) 기록한 것을 지금의 상황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비슷한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시간의 흐름이 유독 우리 중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하다. 현재의 중화민국은 여전히 오대요, 송말이요, 명말이다.

               – 『화개집』 「문득 생각나는 것 4」 p 39 그린비 –

그들의 自大하는 마음, 정신승리법, 온고지신의 자세 등등. 더 나아가 삼황오제라는 신화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모든 문물의 기원을 찾아내는 능력.

루쉰은 이런 복고적 인식의 틀을 전면 부인했다. 현실을 직시 하지 못하는 중국인들에게 한편으로는 커다란 채찍이 내려쳐지지 않으면 중국은 스스로 움직이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절망 하면서도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갔다. 물론 루쉰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루쉰은 스스로 다른 사람의 길을 인도하는 게 쉽지 않다며  자신조차도 어떻게 길을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 『무덤』 뒤에 쓰다. 1926.11.11. –

중국인들은 나라의 관습과 제도를 높이 치켜세우며 대단하다고 찬미하나 그런 집단적인 행동 이면에는 개인은 군중 속에 숨는 비겁함이 있다. 그들은 단지 군중 속에서 구경꾼으로 머물고 주체로 나서지 못한다. 물론 모든 중국인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특히 루쉰이 언급한 중국인 중에서도 상등인들이 사는 방법인 ‘밀치기’와 ‘발차기’는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하지만 더 그를 낙담하게 하는 것은 ‘밀치기’와 ‘발차기’를 당한 사람들의 태도이다. 그들은 스스로 최면을 건다. 우리 중국인들은 원래부터 스스로 실족해서 물에 빠지는 사람들이라고.

나머지 대다수 하등 중국인들은 ‘기어가기’와 ‘부딪히기’를 온 몸을 다 받쳐 죽을 때 까지 한다.

루쉰은 베이징여사대 사건을 겪으면서 “하나님인 양 현상 너머로 초연한 채 대단히 공평한 척” 하고 “힘 있는 자에게 빌붙어 모습을 드러낼 때가 되면 횡설수설 입을 놀리는 회색의 인간들”에 맞서 그들의 수법인 뜬소문 내기, 그리고 뒤집어 씌우기, 견강부회하는 ‘다수’와 ‘공리’의 속임수에 맞짱 뜨고 있다. 그들은 권력을 등에 업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오직 암흑 속에서만 ‘귀신이 둘러진 담’처럼 존재하므로 이들과 부딪혀 자신이 깨지지 않으면 그들의 정체를 드러내게 할 수 없으므로 피아가 선명하게 될 때까지 싸우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런 루쉰이 좋다.

겁먹지 않고 양생에 속지 않고 복고 뒤에 숨지 않기.

미친개는 몽둥이로 패야하고 비록 짱돌이긴 하나 집어 들었으면 던져야 한다. 결과는 매번 오명을 뒤집어쓰고 실망하게 되지만 컴컴한 바다에 비추는 달빛의 아름다움에 취하지 않고 묵묵히 쉼 없이 나아간다.

루쉰은 중국인이고 백 년 전 인물임에도 내가 그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은 것은 아마도 동 아시아적 가치가 내재된 사회를 살아간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가 걸었던 그 길이 이제는 그다지 두렵지 않고 가 볼 만 한 길이라는 희망을 보여주었기 때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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