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미용 생활

[ 미미 ]

:: 루쉰 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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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용 생활

머리카락 이야기를 쓰려니 내 생애 가장 비싼 미용실에 다니던 때가 생각난다. 강남 모처에 있는 그 미용실은 근방의 다른 미용실과 비교해 봐도 그중 비싸기로 유명한 집이었다. 물론 장점도 있다. 그곳은 다른 건 몰라도 머리 하나 자르는데 온갖 정성을 다 들였다. 여기서 온갖 정성을 들인다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과 비례한다. 그러니까 주기적으로 ‘외쿡’에서 연수받고 오신 원장님이 최신식 스타일로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그야말로 오랜 시간에 걸쳐 정성을 다해 잘라준다. 오랜 시간=정성이 주는 만족감은 생각보다 컸다. 꽤 오랫동안 그 미용실을 애용한 걸 보면. 그러면 계속 다니지 왜 그만뒀는가? 때마침 공부를 하러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문학과 미용 생활

인문학 공부는 사람을 정말이지 많이 변화시킨다. 공부가 시작되자 미용실은 고사하고 세수만 겨우 하고 갈 때도 많았다. 그러나 빡쎈 인문학 공부 과정도 나의 소중한 미용 생활을 막지 못했다. 틈만 나면 뭐라도 찍어 바르고 열심히 머리를 감고 다녔다. 문제는 여기에서 불거졌다. ‘틈만 나면 뭐라도 찍어 바르고 열심히 머리를 감고 다닌’것이 어느새 모든 문제의 원인처럼 되어버렸다. 왜 때문에? 나의 미용 생활은 아직도 버리지 못한 허영심의 증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나중에는 머리를 잘라보라는 충고도 들었다. 그러니까 나의 소소한 미용 생활, 그걸 포기하면 공부도 마음가짐부터 달라진다는 말인데, 이 말이 맞나?

이런 면에서 루쉰의 「수염이야기」는 재미나다. “당신은 어찌하여 일본인의 모양을 흉내 내어, 신체도 왜소한 데다 수염까지 그렇게….”한 국수가(國粹家) 겸 애국자가 거창하고 탁월한 이론을 전개하자, 당시 세상물정 모르는 젊은이였던 루쉰은 꼬박 꼬박 논쟁을 벌인다. 첫째, 내 신체는 본래 그 정도 크기이며…둘째, 내 수염은 실로 여러 일본인과 닮았지만 그건 일본인 흉내가 아닌 독일의 황제의 수염이 그 기원이며….어쩌구 저쩌구.

아무튼 루쉰의 해명에도 그 국수가는 노여움을 풀지 않았던 듯하다. 여러 차례 반복해서 말싸움하는 일도 번거로워 되는대로 놔두니, 이번에는 수염이 다시 아래로 늘어져 버렸다. 그러자, 중국문화의 고수자인 국수가들의 만족을 산 대신 이번엔 개혁가들의 반감을 샀다. 수염이 치켜 올라가면 일본인 흉내가 되고, 내려가면 국수가가 되니 당최 난감한 일이었겠다.

그런데, 수염 이전에 고초를 겪은 이가 있었으니 그건 머리털이다. 「두발이야기」는 수염보다 더 심각하다. 중국의 반제국, 반봉건 혁명인 신해혁명 이전의 상황은 “온통 머리털이면 관병에게 살해되고, 변발을 하고 있으면, 장발적에게 살해되는” 현실이었다. 변발을 잘라 민머리가 아니면 나라가 머리통을 자르고, 죽는 게 무서워 변발을 하고 있으면 당시 개혁군인 장발적에게 머리통을 잘리니, 그야말로 머리털 하나 때문에 민중이 고초를 겪고 목숨을 잃는 수난의 시대였다.

혁명이 가능하다고 습속의 혁명까지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신해혁명 이후에도 한동안 머리털의 수난은 계속됐다. 머리를 자르고 나가면 가짜 양놈이라는 비아냥을 듣기 일쑤일 뿐만 아니라, 학생들은 머리를 잘랐다고 학교에서 제적당하고 여학생은 입학도 못하는 답답한 현실. 머리털 하나로 권력자는 민중을 억압하고, 머리털 하나로 고초 받던 민중은 다른 민중에게 손가락질 하는, 서로에게 벌이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루쉰은 개탄한다. “조물주의 채찍이 중국의 등짝을 내리치지 않는 한, 중국은 영원히 이 모양 이 꼴일 거야. 스스로 머리털 하나도 바꾸려 하지 않을 테니 말야!” (『루쉰전집』 2, 「두발이야기」, 그린비, 80쪽)

조물주의 채찍에 등짝을 후려 맞아도 머리털 하나 스스로 바꾸지 않으려는 우매함. 권력자들의 우매함이 욕망에 가려진 사유의 부재라면, 당시 민중들의 우매함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편으로 보인다. 이래도 머리통을 잘리고 저래도 머리통을 잘리니 눈치만 늘 수밖에.

우리도 머리털 때문에 고초를 겪었다. 멀게는 개화기 때의 상투 잘리는 이야기부터 학창시절 두발단속에 이르기까지, 할 얘기라면 중국 못지않다. 예전에, 고시생이거나 삼수생이던 동네 오빠가 갑자기 머리를 빡빡 깎고 나타나면, 어른들은 “음, 드디어 공부를 제대로 하려나보군.” 하며 매우 흡족해했다.

머리털이 이토록 중요하다. 스스로 머리를 자르는 행위는 일종의 의식과 같다. 단순히 기분 전환을 위한 미용실 걸음에서부터 투철한 의지를 표명하는 결연한 삭발식까지 머리털은 또 다른 자기 자신의 의지의 표명이다. 시대에 부합하려는 혹은 부합하지 않으려는, 아니면 부합할 수밖에 없지만 그 사이로 삐져나오는 비시대성을 막을 수 없는 자기의 표현이 두발, 즉 머리털이다.

그러니 루쉰 당시의 변발과 단발은 그저 머리털의 문제가 아니라, ‘국수’와 ‘개혁’이라는 당대의 첨예한 문제와 결부되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단발이 ‘개혁’이고 변발이 ‘국수’가 아니듯, 개혁과 국수는 머리털 모양에 있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있다. “스스로 머리털 하나 바꾸지 못하는” 그래서 눈치가 부쩍 늘어난,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대세를 따르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경각심.

나의 슬기로워야 할 미용 생활

다시 딜레마에 빠졌다. 나의 미용 생활에 대해 급기야는 머리를 자르라는 얘기까지 들었으니 뭐라도 하긴 해야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문제의 앞머리 자르기.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앞머리‘만’ 자르기. 스스로 머리털 하나도 내 의지로 못하는 나의 욕망은 이러했다. 머리를 자르자니 그건 싫고, 안 자르자니 허영심이니 욕망이니 하는 말을 들어야 하고. 그래서 얄팍한 속임수를 낸 게 앞머리 자르기였으니, 그게 통할 리 없던 당시의 결말은 당신의 상상에 맡겨 두겠다.

대략 4~5년 또는 7~8년 전이었을 것이다. 나는 회관에 혼자 앉아서 몰래 내 수염의 불행한 처지를 슬퍼하면서 그것이 비방을 받게 된 원인을 따져보았다. 불현 듯이 크게 깨닫게 되었는데, 그 화근은 오로지 양쪽 끝자락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거울과 가위를 꺼내 와서 당장에 평평하게 잘라서 위로 치켜지지도 않고 아래로 늘어뜨려지기도 어렵게 예서의 ‘한 일’ㅡ자 모양으로 만들었다. (『루쉰전집 』1, 그린비, 『무덤』 「수염이야기」 270쪽)

슬기로운 루쉰선생! 이도 저도 귀찮아진 그는 수염을 한 일자로 자르면서 귀찮음에서 벗어났다. 가여운 나는 앞머리만 한 일자로 자르면서 쯧쯧, 혀 차는 소리를 얻었다.

문득 궁금하다. 예전, 머리를 빡빡 깎아 공부 의지를 드러내던 그들은 어떻게 됐더라. 기억에 없는 걸 보니 아마도 그들이 원하는 결과는 아니었던 듯싶다. 머리와 화장을 포기하고 글이 잘 써지고 공부가 잘 된다면 백번 그러겠다. 머리와 화장에 신경 쓰느라 공부가 안 된다면, 머리를 자르고 화장을 지우면 된다. 머리와 화장을 해야 잘 된다면, 하면 된다. 핵심은 공부에 집중하고자 하는 마음에 있지 머리와 화장에 있지 않다. 그저 각자에 맞는 슬기로운 미용 생활을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참, 덧붙이자면, 2년 전, 다시 그 미용실 이름을 들었다. 많이 슬기롭지 못했던 미용 생활을 즐기신, 전 대통령 올림머리 전담 미용실 원장이 바로 그녀였던 것. 아직도 포기 못한 나의 미용 생활을 위해 강남 모처 미용실로 돌아가긴 귀찮다. 머리털 하나 자르러 뭐하러 먼 데까지 그 돈을 들이고 간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분명 미용에 있어서만큼은 조금 더 슬기로워진 게 분명하다. 좀 착잡한 마음으로 기사를 보다가 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미용실에 다니던 무렵, 그렇게 예약하기 힘든 이유가 ‘거기’ 가서 올림머리 해주느라 그래서 그랬나.

2019. 2. 12. 오랜만에 해방촌에서 미미 씀.

야매 루쉰 연구자이자 야매 철학자. 아무튼 야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