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두 얼굴을 가졌다

[ 기픈옹달 ]

:: 경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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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한동대 장순흥 총장의 인터뷰가 지난 4월 국민일보에 실렸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에 맞서 기독교 건학이념과 신앙교육의 자유를 지켜가겠다 주장한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2017년 페미니즘 강연을 개최했다는 이유로 한 학생에게 무기정학 처분을 내렸다. 명목상 이유는 ‘교직원에 대한 언행불손’이었다지만, 기독교 건학이념을 훼손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나님의 대학에서 동성애는 물론 페미니즘 따위는 입에 올려서도 안된다는 뜻이었다.

지난 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징계가 부당하다 판단했다. 이에 징계 처분을 취소하라고 권고했으나 모교는 기독교 건학이념을 훼손하는 일이자 신앙교육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라며 분연히 반발했다.

장순흥 총장의 인터뷰가 약 한 달 뒤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지난 5월 16일 이에 얽힌 중요한 법원의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사건 당시 교목을 비롯한 보직교수들은 앞장서 강연을 방해했으며 징계받은 학생이 이성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떠들며 공격하기도 했다.

법원은 한동대 법인과 교목에게 500만원씩 배상하라 명령했다. 개인의 성적지향성을 외부에 폭로하여 개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였다. 과연 법원에 대한 장순흥 총장의 입장은 어떨까?

짐작컨데 국가인권위에 대한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 신앙의 자유는 법보다 우선이므로. 신앙은 고매하나 법은 지저분한 세속의 도구아닌가. 인권의 이름으로 자행된 핍박이 있었다면 이제는 법원의 핍박이 있다며 항변할 테다.

장순흥 총장의 입장이 궁금한 사건은 또 있다. 최근 총동문회를 발칵 뒤집어 놓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 내막은 이렇다. 작년 말 총동문회장이 갑자기 사임하고 잠적해 버렸다. 워낙 사회 활동이 많은 터라 자연스레 의문이 따라붙었다. 게다가 구글 연관 검색어도 의문이 불어나는데 한몫을 했다. 그의 이름 뒤에 ‘미투’가 따라붙었던 까닭이다.

맞다! 구글신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다. 5월 10일 그가 청소년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졌다. 참고로 그는 졸업후 교육 전문 비영리 단체의 대표로 이름을 떨치던 인물이었다. 이 단체에서 멘토링을 받던 청소년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 기사에 따르면 사건이 벌어진 것은 작년 2018년 9월. 그가 갑작스레 잠적한 것은 10월이었다.

모교를 대표하던 인물의 몰락은 많은 동문에게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이에 오랜만에 총동문회 커뮤니티가 시끄러웠다. 총동문회는 의외로 발 빠른 대응을 내놓았는데 그 첫문장은 이랬다. “동문회는 이번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앞서 총동문회장 사임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일신상 이유로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 없다는 답변만 하더니. 총동문회장의 변호를 부회장이 맡았다는 사실은 감춘 채.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일부 동문의 반응이다. 범죄를 저질렀고, 범죄에 처벌을 받았으니 끝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모교의 특성상 커뮤니티에서는 늘 기도, 중보, 협력 따위의 말이 넘치는데 갑자기 법률 용어가 넘실거리고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법의 문제는 법관에게. 그러므로 끝!

장순흥 총장으로 돌아가자. 그는 앞서 이렇게 말했다. “한동대가 동성애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다자성애 옹호 학생에게 무기정학 결정을 내린 것도 페미니즘과 성평등이 묘하게 결합한 반생명 문화 속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고매한 신앙. 생명 존중. 성스런 성. 다 좋다. 그토록 세속과 싸우기 위해 몸부림쳤다면 이 문제, 총동문회장의 성범죄는 어찌 다루어야 하나? 여기에 하나 덧붙일 사실. 그의 동료, 모교 동문, 모교 교수 등이 그를 위해 탄원서를 써주기도 했다는 점.

참고로 법원의 판결은 장순흥 총장의 인터뷰보다 약 한달 앞서 내려졌다.

사건을 지켜보며 내내 궁금했다. 무섭도록 단호했던 이들은 이에 어떻게 반응할까? 동성애건 페미니즘이건 성소수자건 모두 찍어 불에 태워버려야 한다는 이들이 무어라 말할지 궁금했다. 율법의 칼로 법의 지팡이에 맞서 싸우겠다했는데 이번에는?

일련의 사건은 몇가지 질문거리를 던져준다. 공공교육 기관인 대학은 개인의 자유를 어디까지 침해할 수 있는가? 교회가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것과 대학이 배척하는 것이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사회의 상식보다, 법보다 믿음이 우선이라면 거기에는 또 어떤 도덕적 책임이 뒤따르는가?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성을 지키기 위해 성소수자에게 돌을 던졌다면, 성범죄자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쪽에서는 돌을 던졌지만, 다른 쪽에서는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며 바닥에 글씨나 끄적거려야 할까?

성스런 이야기로 끝을 맺자. 기독교 전통은 이런 ‘성’을 둘러싼 문제가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본다. 저 옛날 아담과 하와는 발가벗고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성서는 선악과를 먹자 부끄러움을 알고 몸을 가리었다 말한다. 야훼의 질문에 최초의 인간 아담의 답은 이렇다. 여자가 나를 꾀었다.

죄는 어디서 잉태되었을까? 뱀의 꾀임에 마음이 흔들렸을때? 선악과를 먹었을때? 그러나 거꾸로 ‘핑계’야 말로 죄의 근원이 아닐까. 성찰하지 못하는 정신이 죄를 낳는다. 야훼가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먼저 물었던 것은, 그 동산의 책임이 일차적으로 바로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최초의 자녀,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인다. 아벨의 행방을 묻는 야훼의 질문에 카인의 대답.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모든 것을 아는 야훼는 왜 불필요한 질문을 던졌을까? 카인에게 주어진 저주는, 동생을 죽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뻔뻔하기 때문일까.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빌라도는 손을 씻어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성서의 야훼는 이렇게 말한다.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창세기 4:10)

죄없다 항변하는 이들이 있다. 성소수자를 내쫓았고 성범죄를 처벌했다. 한쪽에는 돌로, 한쪽에는 법으로. 모든 것이 완벽하다. 그렇게 악마는 두 얼굴을 가졌다.

2019.05.28.

기픈옹달

독립연구자.
黥치는 소리 혹은 經치는 소리, 
아니면 磬치는 소리 뎅뎅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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