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세미나 [파르티잔]을 시작하며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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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원고료와 마감이 주어졌을 때 써지는 것이다. 소재가 없어도, 주제가 없어도 써지는 것이 글이다. 그렇게 써진 것도 글이라면 말이다. 원고료가 많거나 적거나 결국에는 마침표를 찍어 보냈고, 마감이 코앞에 닥치면 신들린 듯이 유려한 문장을 쏟아내는 일도 종종 있었다. 나의 글쓰기 시냅스는 돈과 시간을 연료로 움직이는 영특한 아이들이다.

클라이언트가 흡족해 하는 카피, 유행어와 위트있게 접목된 트렌디한 문장,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스토리텔링!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쓰고 싶은 문장이 아니라 누군가가 원하는 그 무엇이다. 자본주의의 욕망은 나의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라 했던가. 나의 글쓰기 욕망이 있어야 할 자리에 타인들의 요구사항과 원고료와 마감이 있다.
지금 쓰는 문장들이 현재형인 것은 어제도 오늘도 나의 글쓰기 시냅스는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던 대로, 기계처럼. 이 녀석들을 퇴화시킬 수는 없다. 자본주의 글쓰기 기계 덕분에 그럭저럭 삶을 이어올 수 있었기에. 그리고 앞으로도 어쩌면 이 녀석들의 활약으로 이 자본주의라는 운동장을 뛰어다닐 수 있을 것이기에. 그렇게 “써진” 글들이라서 “가치”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적화된 글쓰기가 얼마나 효용가치가 있는지 자본도 알고 나도 안다.

그래서 이번 참에 질문을 하나 던져보려고 한다. 나는 원고료와 마감이 없어도 글을 쓸 수 있을 것인가. 글쓰기로 돈을 버는 일 말고 글쓰기 자체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있는 것인가. 자본주의 글쓰기가 아닌 글쓰기를 묵묵히 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 잠깐,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예를 들어, 영화를 만들어도 레드카펫에 서고 싶지 않다거나 소설을 써도 베스트셀러가 되고 싶지 않다거나.

욕망에 대고 거짓말하거나 본인의 능력없음이 드러나 버릴까 겁내는 자들은 쉽게 ‘순수한’ 예술이 있는 것처럼 말할 것이다. 지고지순하게 예술을 추구했더니 영광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투로 얘기하고, 자본과 대중에 친숙한 예술가들을 수준 아래로 취급하며 본인을 장인의 경지에 올려놓는 기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얘기는 더 이상 멋있지도 않고 와 닿지도 않는다.

사실 나는 내 욕망의 주파수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베스트셀러로 향했다가 소소하기 그지없는 파파할머니로 향했다가 그 편차가 너무 심해서 멀미가 날 지경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글쓰기와 함께 어떤 할머니가 되어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질문을 되새겨 보자. 나는 자본주의의 그 “가치”가 아닌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분명히 글을 쓰고 싶다는 책동에서 시작된 (직)업이다. 그 자리에 현재 무엇이 자리하고 있던 욕망에 빚지지 않고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 보고 싶다. 자본주의 기계가 된 지금의 시냅스 말고, 잠들어 있던 새로운 시냅스를 깨워 연결해 볼 생각이다. [파르티잔]은 나에게 글이 “써지는” 수동에서 글을 “쓰는” 능동으로 나의 신체를 바꾸는 작업이다. 내가 가진 능력이, 그 모자람이 여실히 뽀록나길 바라면서 글을 써 나가볼 계획이다. 이미 쪼그만 시냅스가 깜박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믿고 싶다.

아라차

기자, 카피라이터, 에디터, 편집장 일을 했다.
글 쓰고 책 만드는 일을 간간히 하며 “공부 중” 상태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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