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힙’하지 않은 글

[ 미미 ] :: 루쉰 잡감 // 나는 천성이 좀 게으르고 한량끼가 있어 먹고 놀면서 취미생활이나 하며 살면 되는 사람이었다. 어쩌다 책은 좋아해서 작은 서점이나 하나 하면서 읽고 싶은 책이나 실컷 읽으며 한평생을 보내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애석하게도 그런 생각은 동네 서점이 망해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어쩐지 동네 서점을 생각하면 늘 겨울이다. 우리 집 길 건너에 있던 서점을 겨울에만 갔을 리도 없는데. 지금은 이름도 잊어버린 그 동네 서점을 생각하면 일종의 폐기될 수 없는 마음이 있다. 난로에 … Read more

잊어달라니, 롄수

[ 미미 ] :: 루쉰 잡감 // 똑똑한 사람을 보는 일은 즐겁다. 뭐 하나 명쾌하지 않은 세상에서 저리도 똑부러지게 자기 생각을 말 할 수 있다니. 확실한 글을 쓰는 이는 부럽다. ‘이렇다’고 쓰려니 ‘저렇다’가 걸려서 주저하지 않을 수 있다니. 잊어달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프다. 잊어달라는 말은 말하는 당사자가 아닌, 이 말을 들을 상대방을 위한 것이기에. 나에겐 롄수가 그렇다. 죽음이 좋은 일이 되는 사람이 있다. 현세에서 살아봤자 별 수 없는 자가 사라져 주는 것만으로도 남을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나 어떤 이유에서든 좋은 일이 되는 … Read more

노바디 노바디

[ 미미 ] :: 루쉰 잡감 // 나는 강남 아줌마다? 가끔씩 이런 제목을 쓰고 나면 묻고 싶다. 강남이란 무엇이고 강남 아줌마와 강남 아줌마 아님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강남에 산다고 강남사람인가. 아니면, 강남적 욕망을 가진 모든 사람이 강남사람인가. 그러나 다음에 생각하자. 지금은 조국 때문에 마음이 부산스럽다. 그렇다. 조국 때문이다. 그 사람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기도 하지만 내 마음이 더 시끄럽다. 왜냐하면 조국 딸이 밟았던 과정은 나와 내 이웃인 강남 아줌마들이 바라마지않던 코스였기 때문이다. 조국의 딸과 같은 세대의 자녀를 가진 당시 우리에게 특목고의 … Read more

닭과 개를 다오!

[ 미미 ] :: 루쉰 잡감 // 닭과 개가 중요하다 요즘 마오의 평전을 읽고 있다. 루쉰에 대한 관심에서 어쩌다보니 마오와 공산당의 역사까지 읽게 된 것이다. 마오 개인의 역사는 물론이고, 중국 공산당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읽다보니 드는 여러 가지 생각 때문인지, 오늘 눈에 들어오는 루쉰의 글은 이런 거다. 대략 2천 년 전에 류선생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각고의 노력 끝에 신선이 되어, 부인과 같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부인은 올라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가? 그녀는 살던 집이며 기르던 닭과 … Read more

커피 커피, 혁명 혁명

[ 미미 ] :: 루쉰 잡감 // 에브리데이 커피 처음 문장을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라고 쓰려니 과연 내가 커피를 좋아하나 다시 묻게 된다. 분명 커피를 즐겨 마시긴 하지만 이젠 커피가 더 이상 특별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물같이 느껴져서 좋아한다고 쓰는 게 맞나 싶다. 어디를 둘러봐도 한집 걸러 카페이고 언제 어디에나 손쉽게 마실 수 있는 게 커피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스타벅스에 가는 여자들을 ‘된장녀’라 불렀던 적이 있다. 비싼 프랜차이즈 커피를 마시는 게 허영심의 표상인 것 마냥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 일이 이제는 … Read more

옆에 있는 것들

[ 미미 ] :: 루쉰 잡감 // 이것도 삶이야 1930년대 상하이. 어느 여름 날 루쉰은 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이렇게 말했다. “살아야겠소. 무슨 말인지 알겠소? 이것도 삶이야. 주변을 둘러보고 싶소.” 그가 둘러봐야겠다는 주변은 다름 아닌, 늘 잠이 들고 잠이 깨는 곳 그리고 지금은 아파 누워있는 자신의 방이다. 고작해야 자신의 방. 누구에게나 자신의 방은 아무렇지도 않은 장소다. 잠이 들기 전 되는대로 읽던 몇 권의 책, 겨우내 덮어서 내 몸과 같아진 이불, 낮이고 밤이고 쳐놓은 커튼의 무게까지 그저 그런 낡은 일상과 같은 방. … Read more

이런 엔딩 2

[ 미미 ] :: 루쉰 잡감 // 죽음들 죽음에 대한 말을 하는 것은 경박하다. 왜냐하면 죽음은 너무도 무거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무겁게 생각하게 되는 몇 가지 감정은, 죽음으로 인한 두려움과 슬픔이다. 내가 없어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남이 없어진다는 것에 대한 슬픔, 이 두 가지를 감당하기 힘들기에 죽음은 그토록 입에 올리기 어려운 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죽음에 대한 몇 마디 말을 남기고 싶은 것은 죽음을 좀 다르게 생각해보고 싶어서다. 대학교 때, 친구의 남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었다. 우리가 2학년이었으니 연년생인 동생은 스무살이었겠다. 비통한 표정으로 … Read more

이런 엔딩

[ 미미 ] :: 루쉰 잡감 // 너는 너무 부정적이야 사물과 사람을 볼 때 좋은 점을 잘 보지 못한다. 보지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단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스케일이 큰 사람 축에는 못 드는 편이라 그럴 것이다. 책을 읽어도 사람들을 만나도 온통 딴지걸 것 투성이였다. 이런 부정적인 면이 좋게 받아들여지는 일은 별로 없기에 고쳐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런 성향은 고쳐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서 그냥저냥 지내왔다.  이런 성질은 어떤 면에서 인문학 공부에 맞기도 하고 맞지 않기도 하다. 인문학 공부는 공부를 … Read more

시시콜콜한 이야기

[ 미미 ] :: 루쉰 잡감 // 말 위에서 쓰다 루쉰이 일기를 썼다. 보통 일기는 하루를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해서지만 이번에는 잡지에 투고할 요량으로 썼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일기를? 원래 일기는 혼자 보려고 쓰는 거 아니었나? 그러고 보니 제목도 이상하다. 원제가 「마상 일기(馬上日記)」라 되어있다. 말 위에서 쓰는 일기라니. 내용은 더 이상하다. 불과 몇 달 전, 『화개집』에서 북경여사대 사건으로 천시잉 교수와 싸울 때와는 딴판이다. 음식이야기, 위장병 때문에 약 타러 갔을 때 생긴 일, 아껴먹고 있는 곶감사탕이나 집안일을 봐주는 아줌마와의 신경전, 밀린 월급 … Read more

1² 되기

[ 미미 ] :: 루쉰 잡감 // 이번 생은 글렀어요 이 이야기는 쓸쓸하고 적막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벌써 제목에서부터 체념과 회환의 기운이 서려있지 않은가 왜. 내가 다소 과장된 ‘글렀다’는 표현을 쓴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무료와 환멸. 요 근래 내 상태다. 무료는 아내와 엄마 역할이 사라진 자리에 찾아왔다. 일종의 적적함이 울적함이 된 경우다. 환멸은 이런 저런 일로 인해 인간에 더 이상의 기대 없음을 입증하는 상태다. 이렇게 된 원인은 있다. 하지만, 몇 가지 원인을 가지고 관계에 대한 가치가 무너진 현재 …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