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에세이

같잖은 글, 같잖은 보헤미안 랩소디

[ 미미 ] :: 루쉰 잡감 // 가는귀와 보헤미안 랩소디 언제부터인지 목소리가 커졌다. 물론 목소리가 큰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를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목소리가 크고 또렷하다고 각종 발표를 도맡아 했다. 목소리가 크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것까지는 없었지만 장점 정도는 되다가, 요 근래 들어 목소리가 큰 데 대한 타박을 자주 받곤 한다. 이른바 가는귀가 먹은 것이다. 내 ‘가는귀 먹음’에 크게 일조한 것은 영국 그룹 ‘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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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한 잔소리를 생각하다②_비판

[ 지니 ] :: 인문학, 아줌마가 제일 잘한다! // 나는 지난 글 말미에 고병권의 짧은 글 <비판이란 무엇인가>(『다시 자본을 읽자1』의 부록)를 읽고 이제는 딸에게 쉽게 잔소리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썼습니다. 내 잔소리가 대부분 ‘교정으로서의 비판’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알고 난 후 나는 겁을 먹었었습니다. ‘이제 우리 딸과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해서요. 참 슬픈 일이죠, 잔소리 말고는 할 말이 없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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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줍’의 묘미猫美

[ 삼월 ] :: 밑도 끝도 없이 // ‘냥줍’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냥줍’은 고양이 울음소리를 귀엽게 표현한 단어에 ‘줍다’라는 단어를 붙인 말이다. 뜻은 ‘길에서 고양이를 줍다’ 정도 되겠다. 인터넷과 젊은이들 사이에서 ‘냥줍’이 유행한지는 제법 되었다. 이유가 뭘까? 단 두 개의 음절로 이루어진 이 짧은 단어에서 단서를 찾아보자. 먼저 왜 고양이인가? 도시에서 동물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구라는 개도 있고, 도시의 하늘과 광장을 배회하는 비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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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짜리 우쭐함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 얼마 전 후배로부터 나와의 만남이 본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놨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좋은 의미로 한 얘기였다. 몇 초간 우쭐했다.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그 사실이 나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약 1초짜리 우쭐함 외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 곧 밝혀진다. “좋은 의미”라는 말 앞에는 꼭 “현재까지는”이라는 단서가 붙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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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스런 것들의 쌍스런 세상

[ 기픈옹달 ] :: 경치는 소리 // 성기호설性嗜好说, 풀이하면 성性의 기호嗜好에 대한 학설이다.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싶지만 그래도 조선의 대유大儒로 손꼽히는 다산의 말이다. 다산이 이런 신박한 조어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서학西學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마테오 리치는 <천주실의>에서 인간만이 영혼靈魂을 가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이성적 판단이 가능하다 보았다. 다산은 그의 논의를 빌어 인간의 성기호性嗜好란 바로 선에 대한 기호라 주장한다. 참 재미없는 주장이다. 그저 맹자의 성선설性善说을 다르게 말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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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여기에 와 버렸다

[ 기픈옹달 ] :: 경치는 소리 // 작당모임은 어느날 불현듯 시작하기 마련이다. 어쩌다보니 글쓰기를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파르티잔’이라는 이름도 뚝딱 지어졌다. 아, 첫 이름은 ‘빨치산’이었지만 이내 좀 고상한 이름으로 바꾸기로 했다. 파.르.티.잔. 첫 시간 안내문이 올라왔다. “세상의 형식과 친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글쓰기를 추구하겠다는…” 부담 되는 말이다. ‘세상의 형식’과 친한 것은 둘째치고, 세상의 형식이 뭔지 좀 배우고 익혔으면 하는 게 바람이다. 이른바 부와 명예는 세속의 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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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하는 잔소리를 생각하다①_비판

[ 지니 ] :: 인문학, 아줌마가 제일 잘한다! // 일본의 저자 우치다 타츠루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출간된 그의 책 『하류지향』이 한 때 많이 회자되는 듯했는데, 나는 『하루키씨를 조심하세요』의 저자로 그를 알고 있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자신의 완전 편파적인 팬심을 솔직하게 드러낸 글이어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요. 그런데 얼마 전 니체읽기 세미나를 함께 하는 한 분의 분노 섞인 일성이 들리는 겁니다. “어떻게 니체를 이딴 식으로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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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세미나 [파르티잔]을 시작하며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 글은 원고료와 마감이 주어졌을 때 써지는 것이다. 소재가 없어도, 주제가 없어도 써지는 것이 글이다. 그렇게 써진 것도 글이라면 말이다. 원고료가 많거나 적거나 결국에는 마침표를 찍어 보냈고, 마감이 코앞에 닥치면 신들린 듯이 유려한 문장을 쏟아내는 일도 종종 있었다. 나의 글쓰기 시냅스는 돈과 시간을 연료로 움직이는 영특한 아이들이다. 클라이언트가 흡족해 하는 카피, 유행어와 위트있게 접목된 트렌디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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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잖은 글, 같잖은 보헤미안 랩소디

[ 미미 ] :: 루쉰 잡감 // 가는귀와 보헤미안 랩소디 언제부터인지 목소리가 커졌다. 물론 목소리가 큰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를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목소리가 크고 또렷하다고 각종 발표를 도맡아 했다. 목소리가 크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것까지는 없었지만 장점 정도는 되다가, 요 근래 들어 목소리가 큰 데 대한 타박을 자주 받곤 한다. 이른바 가는귀가 먹은 것이다. 내 ‘가는귀 먹음’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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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한 잔소리를 생각하다②_비판

[ 지니 ] :: 인문학, 아줌마가 제일 잘한다! // 나는 지난 글 말미에 고병권의 짧은 글 <비판이란 무엇인가>(『다시 자본을 읽자1』의 부록)를 읽고 이제는 딸에게 쉽게 잔소리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썼습니다. 내 잔소리가 대부분 ‘교정으로서의 비판’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알고 난 후 나는 겁을 먹었었습니다. ‘이제 우리 딸과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해서요. 참 슬픈 일이죠, 잔소리 말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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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줍’의 묘미猫美

[ 삼월 ] :: 밑도 끝도 없이 // ‘냥줍’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냥줍’은 고양이 울음소리를 귀엽게 표현한 단어에 ‘줍다’라는 단어를 붙인 말이다. 뜻은 ‘길에서 고양이를 줍다’ 정도 되겠다. 인터넷과 젊은이들 사이에서 ‘냥줍’이 유행한지는 제법 되었다. 이유가 뭘까? 단 두 개의 음절로 이루어진 이 짧은 단어에서 단서를 찾아보자. 먼저 왜 고양이인가? 도시에서 동물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구라는 개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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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짜리 우쭐함

[ 아라차 ] :: 철학감수성 – 아라차의 글쓰기 실험 // 얼마 전 후배로부터 나와의 만남이 본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놨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좋은 의미로 한 얘기였다. 몇 초간 우쭐했다.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그 사실이 나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약 1초짜리 우쭐함 외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 곧 밝혀진다. “좋은 의미”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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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스런 것들의 쌍스런 세상

[ 기픈옹달 ] :: 경치는 소리 // 성기호설性嗜好说, 풀이하면 성性의 기호嗜好에 대한 학설이다.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싶지만 그래도 조선의 대유大儒로 손꼽히는 다산의 말이다. 다산이 이런 신박한 조어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서학西學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마테오 리치는 <천주실의>에서 인간만이 영혼靈魂을 가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이성적 판단이 가능하다 보았다. 다산은 그의 논의를 빌어 인간의 성기호性嗜好란 바로 선에 대한 기호라 주장한다. 참 재미없는 주장이다.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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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여기에 와 버렸다

[ 기픈옹달 ] :: 경치는 소리 // 작당모임은 어느날 불현듯 시작하기 마련이다. 어쩌다보니 글쓰기를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파르티잔’이라는 이름도 뚝딱 지어졌다. 아, 첫 이름은 ‘빨치산’이었지만 이내 좀 고상한 이름으로 바꾸기로 했다. 파.르.티.잔. 첫 시간 안내문이 올라왔다. “세상의 형식과 친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글쓰기를 추구하겠다는…” 부담 되는 말이다. ‘세상의 형식’과 친한 것은 둘째치고, 세상의 형식이 뭔지 좀 배우고 익혔으면 하는 게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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